상해 생활 16년차. 그 동안 하던 일을 정리하고 작은집으로 이사하며 이젠 다시는 책을 사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그 당시엔 우리나라 책이 귀했고 우리집 방문객들은 마치 의무처럼 선물로 책을 들고 왔다. 그렇게 모아진 책들이 수백 권. 이제는 바뀐 환경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그 많은 책들을 처분하며 어찌나 마음이 쓰리던지. 그러면서 매주 교민 도서관을 애용할 수 있으니 굳이 책을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친구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 하기 전 까지는 말이다.
그날 한국의 친구들과 단톡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한 친구가 화제가 됐다. 영희, 학창시절 우리 반에서 얼굴도 성적도 늘 상위권 이었던 데다가, 그 당시 클래식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독서도 엄청나게 했던 친구. 남녀 공학이었던 우리 학교에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오르내리던 이름. 대학을 다닐 때도 그 후로도 너무나 자유분방 하고 화려해서 우리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친구였다.
그런 친구가 어느 날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화려했던 외모에 걸맞은 것들을 버리고 세상에 없는 현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이전의 삶에서 다시 태어난듯한 얼굴을 하고. 우린 무엇이 이 친구를 이렇게 변화 시켰는지 궁금했고 그것은 이 한 권의 책으로부터 인 것을 알게 됐다. 오그 만디노의《아카바의 선물》.
거침없이 자기의 길을 간다고 생각했던 친구의 내면엔 많은 갈등이 있었나 보다. 자신이 무엇을 해도 공허함 때문에 죽을 것만 같다고 느끼던 어느 날 여행을 가게 됐다고 한다. 여행하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건네준 이 책을 본 후, 하나님이 진짜 있을까 싶어 깊이 파고들어 진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구도의 길을 걷다가 깨달음을 얻어 친구의 삶은 변화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니 얼마나 놀랍고 신비스러운지 그날 우리는 영희에 대해서 열띤 이야기를 했다.
마침 둘째 아들이 한국에서 온다고 하여 이 책을 부탁했다. 빌려서 보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밑줄 그으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15년 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시작을 꿈꾸던 중, 친구와 더불어 이 한 권의 책이 떠오르는 데에는 나도 어떠한 확실한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40대, 그때는 스치듯 읽었던 《아카바의 선물》이 지금 나에게 선물처럼 감동을 준다. 인생이란 길에서 무엇이 소중한지 따뜻한 기운을 느낄 수 있어서 놀라웠다. 맛있어서 빨리 먹고 싶은 것이 있고, 맛있어서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먹고 싶은 것이 있듯이 난 오랫동안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때론 눈물이 때론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며 난 어느새 내면의 순례자가 되어있었다. 혹시 지금 구도의 길에 있거나 마음이 공허해 잠 못 이루고 평안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당신들에게도 이 한 권의 책이 선물이 되길 기대해본다.
칭푸아줌마(pbd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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