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뵐 | 민음사 | 2008.5.
저자 하인리히 뵐은 <여인과 군상>이라는 소설로 197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독일 작가다. 2차 세계 대전에 징집당해 참전한 뒤 전쟁의 참상을 다룬 작품들을 발표했다.
이 작품의 인상적인 부제는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이다. 이 소설 주인공인 카타리나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가사 도우미로 성실하게 일하고 검소하게 살아가면서 작은 집도 마련한다. 똑똑한 일 처리로 고용주의 신망도 두터웠다. 일을 끝내고 간 축제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고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는데, 그 남자는 경찰을 피해 도망 다니던 수배자였다. 그녀의 집까지 추적해 온 경찰은 공범 여부를 조사했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면 다 끝날 것 같았던 상황은 언론이 그 남자와 카타리나에 대한 추측성 기사들을 쏟아내면서 꼬이게 된다.
언론은 그녀의 주위 사람들과 인터뷰 하고, 인터뷰 내용을 교묘히 왜곡해 그녀에 대한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만들어낸다. 심지어 요양병원에 입원한 그녀의 어머니까지 찾아가고, 이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는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기자는 그 어머니의 죽음마저도 그녀의 올바르지 못한 행실 때문이었다고 카타리나에게 책임을 떠안긴다. 주위의 지인들은 신문 기사의 내용만 믿고 그녀를 하나 둘 떠나간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에 대한 추측성 기사를 쏟아냈던 그 기자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절망의 끝에 서서 자신의 삶을 파괴한 그 기자를 향해 총을 겨눈다.
이 소설은 전후 냉전체제가 평범한 사람들의 삶까지도 억압하던 시기에 발생했던 은행강도 사건을 모티브로 쓰여졌다. 하지만 황색 저널리즘의 선정성과 폭력성은 아직도 유효한 것 같다.
한국에서 한때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됐던 한 정치인이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고발된 사건에서, 어렵게 피해 사실을 고발한 피해자가 오히려 언론과 네티즌들에 의해 질투에 눈먼 정부(情婦)로 이미지 왜곡을 당하고, 심지어는 전도유망한 정치인의 앞길을 망친 가해자로 취급되는 과정, 그리고 그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듯한 1심 판결문까지 우리 곁의 카타리나 블룸은 아직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과 달리 성폭력 사건의 경우는 피해 사실을 어렵게 고발한 이에게 ‘2차 가해’라고 명명되는 진실 왜곡과 흑색선전이 집중된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언행에만 초점을 맞춰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며 외모, 성격, 결혼경력 등을 도마에 올린다. 오늘날 언론과 일부 네티즌이 저지르는 2차 가해는 뵐이 살았던 시대에는 없었던 인터넷의 무시무시한 전파력을 바탕으로 피해자에게 피해 사실 그 자체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각종 언론 보도와 정보, SNS, 댓글 등을 통해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더욱 활발해진 사회, 그 자유로운 场에서 각자가 휘두르는 펜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신주영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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