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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메달 시상식에서 고개 숙인 청년

[2020-08-06, 20:31:06] 상하이저널
1936년 8월9일, 베를린, 손기정

1936년 조선의 청년 손기정과 남승룡은 올림픽 개막을 두 달 앞두고 마라톤 코스 답사와 현지 적응을 위해 일찍 베를린으로 출발했다. 도쿄에서 기차와 배를 타고 부산에 도착해 경부선을 타고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다시 만주 열차를 타고 만주에 도착 후 종착지인 베를린을 향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는 여정이었다. 영화 속이나 역사책 속에서만 보던 여정이었다.

1905년 7월 29일 미국과 일본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대한제국을 지배하는 것을 묵인하는 세상에 공표할 수 없는 가쓰라 태프트 밀약을 맺는다. 이후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포츠머스 조약을 체결하고 같은 해 을사늑약을 맺으며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을 강탈하기에 이른다.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8월은 온갖 사건들로 채워지는 달이다.

시간이 흘러 1936년 손기정 선수는 조선 청년으로 최초로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인 일본에 1945년 8월 9일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그 해 8월 15일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는다. 모두 8월에 일어났다.

손기정과 남승룡이 베를린으로 가는 동안 몸을 실었던 만주 철도와 시베리아철도는 실제로는 낭만적이지 않은 철도다. 조국을 잃은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일본을 피해 독립을 갈구하며 만주 철도에 몸을 실었다. 독립투사들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가족을 거느리고 고향을 등진 채 미지의 곳으로 향하는 그들의 여정이 어떠했을지, 그들의 고달픔의 정도를 헤아리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만주와 러시아에서 싸우던 독립투사의 가족은 훗날 러시아에 고려인으로 정착한다. 민주주의를 택한 대한민국과 교류가 없는 사이 그들은 그곳에서 이방인으로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또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이주민이 된다. 그때 또 그들은 시베리아철도에 몸을 실었으리라. 아가사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을 보며 낭만적이던 시베리아철도가 아닌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를 가득 품은 만주 철도와 시베리아철도다.

다시 점령국인 일본의 국기를 달고 뛰어야 했던 비극의 역사의 주인공인 1936년의 청년 손기정의 시점으로 가 보자. 그의 자서전인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의 내용을 참고하면 손기정과 남승룡이 탄 열차는 정기적인 여객열차가 아닌 군수물자를 나르는 화물열차였던 모양이다. 열차는 시도 때도 없이 멈추고 끊임없이 전혀 모르는 광대한 벌판과 호수를 달리기를 반복했다. 화물열차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두 청년의 여정은 올림픽에 참가하는 영광스러운 대표의 여정이 아닌 나라를 잃은 청년들의 슬픔을 닮은 고달픈 여정이었다.
베를린의 일본대사관 직원은 마라톤 대표로 조선 청년이 둘이나 포함된 것이 마땅치 않아 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8월 9일 베를린 올림픽 폐막식 날 올림픽 경기장의 마라톤 우승자는 손기장이었다. 당시 마라톤에서 깰 수 없는 기록이라 여기던 2시간 30분 벽을 깨뜨렸다. 페이스메이커로 손기정의 우승을 도왔던 남승룡은 3위로 들어왔다. 하지만 결승점을 통과한 두 선수는 암울한 조국처럼 웃을 수도 있는 손을 들어 환호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일장기가 달려 있었고 맞지 않는 마라톤화로 뛰며 달리는 내내 불편했던 손기정은 뒤풀이 대신 마라톤화를 벗어 던질 뿐이었다.

베를린올림픽 경기장을 가득 메운 10만 관중이 환호하는 가운데 시상대에 올랐지만, 금메달을 딴 손기정도 동메달을 딴 남승룡도 그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일본국가가 울려 퍼지고 일장기가 올라가는 순간을 볼 수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월계수 꽃다발을 가슴에 모아 유니폼에 그려진 일장기를 가리는 것뿐이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일본은 이후 열리는 모든 경기에 손기정의 출전을 금지한다.

조선 땅에서 조선의 두 청년이 이루어낸 올림픽 금메달은 벅찬 감동을 안겼다. 일장기를 지운 손기정을 보도하며 손기정의 쾌거를 알린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탈한 후 25년 넘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대한독립을 위한 투쟁은 지속하였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일본의 의지와 달리 더욱 선명해지고 있었다. 친일파들이 왜 친일을 했는지 물어보면 대부분의 답이 대한민국이 절대 독립을 하지 못할 거라 여겨서라 한다. 호의호식을 위해 친일한 이들은 목숨을 내놓은 독립투사를 죽을 때까지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부끄럽게도 대한민국의 독립 후 우리는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목숨을 건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에게 그저 후손으로 죄송할 뿐이다.

그로부터 10년 후 1945년 8월 15일 아이러니 하게도 가쓰라 태프트 밀약의 주체인 미국의 히로시마 원자폭탄 후 대한민국은 꿈에 그리는 광복을 맞이한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나라 잃은 설움으로 치욕의 일장기를 달고 금메달을 따고도 기뻐하지도 못하고 고개를 들지도 못했던 청년 손기정을 잊지 말자.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 했다. 만주철도와 시베리아 철도로 몸을 실으며 독립을 위해 싸운 이들의 엉긴 피가 이루어낸 광복이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원자폭탄으로 광복이 이루어진 것 같지만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수많은 독립투사들과 어떤 정책과 협박에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간직하고 지켜낸 우리 민족이 이루어낸 진정한 독립이다. 바닷물도 춤을 춘 광복이다. 

대한민국은 마라톤 강국이다. 손기정을 시작으로 올림픽 경기에서 꾸준히 금메달의 역사를 이어 간다. 올림픽 시상대에 태극기를 단 유니폼을 입고 태극기를 두르고 두 손을 번쩍 들어 환호하며 올림픽 스타디움에 애국가가 울려 퍼진다. 아직 대한민국엔 숙제가 많다. 8월15일이 되면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잔재들이 마음에 걸리고 발목을 잡는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과거의 제국주의로의 회귀를 꿈꾸는 일본의 정치적 도발에 분노하게 된다. 독립을 꿈꾸며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바람처럼 길이길이 대한민국을 지키리라 2020년 8월 또 다짐해 본다.

손기정은 우승자에게만 주어지는 월계수 다발을 가슴에 모아 유니폼의 일장기를 가렸다. 일본은 이를 괘씸히 여겨 이후 열리는 육상경기에 손기정의 출전을 금지했다. 두 청년의 쾌거는 일본을 거쳐 조선에도 알려졌다. 식민지 백성들은 손기정과 남승룡의 세계제패에 벅차하면서도 나라 없는 억울함에 눈물을 삼켜야 했다.

학생기자 한주영(상해한국학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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