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건축 이야기 ①상하이 스쿠먼(石库门)
상하이에 와서 몇 주 후, 가족들과 함께 주말 상하이임시정부청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입구는 큰길에서 안쪽으로 들어간 골목 쪽으로 나 있었다. 임시정부청사 건물 옆으로는 생각했던 상하이 이미지와는 좀 다른 골목길이 이어져 있었다.
높은 빌딩과 쇼핑몰, 소음과 인파로 가득 찬 도심에서 골목길로 한 발만 들어갔을 뿐인데 노인 한 분이 바깥에 내어놓은 의자에 앉아 한가로이 부채질하고 있었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도, 차들도, 소음도 없는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발자국 차이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다니, 기이하지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농탕 vs 후통, 스쿠먼 vs 쓰허위안
이렇게 골목을 사이에 두고 앞집의 뒷문과 뒷집의 앞문이 길게 이어진 상하이의 주거 양식을 ‘농탕(弄堂)’이라고 부른다. 골목이라는 의미로 베이징의 ‘후통(胡同)’과 비슷한 용어이지만, 역사와 기후가 다른 만큼 모습도 분위기도 다를 것이다.
상하이 건축물의 독특한 특징을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단어인 스쿠먼(石库门)은 화강암으로 문틀을 만들고 거기에 목재로 짜 넣은 검은색 대문을 이야기한다. 이 문 상부에는 유럽풍의 문양도 새겨져 있으며, 스쿠먼은 단지 대문의 종류를 나타내는 단어가 아니라 상하이의 독특한 주택 건축 양식을 뜻한다. 베이징에 쓰허위엔(四合苑)이 있다면 상하이에는 스쿠먼이 있는 것이다.
스쿠먼 양식 탄생 배경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하게 된 청나라는 1842년 영국과 ‘난징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맺었다. 이로 인해 홍콩이 영국에 넘어가게 되며 상하이, 광저우가 개항하게 됐다. 지금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듯, 개항한 상하이에는 서양 열강들의 치외법권 지역인 조계지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후 조계지의 인구가 급증하게 되며 주택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부딪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부동산 개발업자는 주방과 화장실을 공유하는 임대용 집을 짓게 된다. 기본적으로는 중국 전통 가옥 양식을 바탕으로 했지만, 좁은 땅에 최대한 많은 건물을 짓기 위해서 옆으로 나란히 집들을 배치한 방식이라든지, 유럽풍의 테라스와 창틀과 같은 유럽 근대 건축을 참고했다든지 등의 다른 점들도 많다. 스쿠먼은 이런 역사와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동서양이 결합해 탄생하게 된 상하이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이다.
고층빌딩으로 대체되는 ‘스쿠먼’
1930년대만 하더라도 상하이에는 이런 스쿠먼 가옥이 도시 건축의 60%를 차지하는 9000동에 달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 전 스쿠먼으로 이뤄진 농탕에서 아이들은 뛰어 놀았을 것이다. 또 공동 부엌에서는 주부들이 각자 가족들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하며 모여서 수다를 피웠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개혁과 개방 그리고 경제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상하이의 롱탕과 스쿠먼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로 대체됐다. 남아있는 롱탕과 스쿠먼은 과밀하고 노후화된 주거지역을 이야기하는 대명사가 됐다.
스쿠먼의 재탄생 ‘신천지 프로젝트’
이런 와중에서도 과거와 현재가 멋지게 어울리는 장소로 다시 태어난 곳도 많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신천지(新天地)다. 홍콩의 루이안(瑞安) 그룹에 의해 진행된 ‘신천지 프로젝트’는 프랑스 조계지였던 타이캉루(太仓路)와 싱예루(兴业路) 일대의 스쿠먼 양식 건물들을 재창조해 현대적인 상업지역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로 1999년에 시작해 3년 동안 14억 위안이라는 거대한 자본들 들여 2001년에 완공됐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공간에 카페, 레스토랑, 쇼핑센터가 조성돼 많은 중국인뿐만이 아니라 중국을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이 반드시 찾아가 보는 유명한 장소가 됐다.
상하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스쿠먼’
비록 중국인들에게는 다소 불행한 역사일 수 있는 불의의 아편전쟁에서 탄생한 조계지를 배경으로 생긴 건축양식이지만, 지금은 다양한 문화들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자리잡았다. 동양과 서양의 양식들이 조화롭게 통합된 스쿠먼 양식의 건물들은 현대에 들어 이루어진 재창조 사업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됐다. ‘하이파이(海派)’라고 불리는 상하이 만의 동서양의 조화를 나타내는 문화의 아이콘이 됐다. 상하이는 지난 세월의 삶과 이야기를 가지고 현재에도 끊임없이 가치를 만들어 내는 중이다.
학생기자 손제희(콩코디아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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