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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기자 논단] 낙태죄라는 위선

[2020-11-05, 16:26:44] 상하이저널

결국 낙태죄 유지 

20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대한민국은 2020년 12월 31일까지 법조항을 개정해야 했다. 기존의 낙태죄는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명목으로 낙태를 한 임신부와 의사를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했다. 

낙태죄를 반대하는 의견은 대한민국에 꾸준히 존재해왔다. 2012년, 사회적 논쟁 끝에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합헌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여성의 자기 결정은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낙태죄에 반대하는 의견은 끊임없이 커졌다. 2017년 10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3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정부는 이 청원에 답해 낙태죄를 추가 검토하기로 약속하면서도 “태아의 생명권은 어떤 권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권리”임을 강조했다. “임신중절 시술은 인간존엄의 가치에 반하는 행위”라는 점도 언급했다. 그러나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불법시술 과정에서 사망하거나 건강을 잃는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에 대한 목소리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 진행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은 임신중절 법안의 개선을 원하던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7일 대한민국의 낙태죄는 끝내 유지됐다. 다만 임신 14주까지 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성범죄 등에 의한 특수한 경우에만 28주까지 중단수술을 허용한다. 이에 대응해 대한민국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낙태죄 전면 폐지와 여성의 재생산권 보장에 관한 청원”이 등장했다.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들(출처: 한국 여성의 전화)

대한민국 낙태죄의 역사 

낙태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뜨거운 논쟁의 주제다. 찬반여론은 어딜 가든 별반 다르지 않다. 낙태가 불법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뱃속 태아가 생명이며 임산부를 포함한 다른 사람이 마음대로 없앨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유에 기반한다. 반면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임신부가 자기 신체에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권리를 정부가 앗아가는 것이라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낙태 역사는 아주 특이한 형태를 지닌다. 낙태가 사실상 합법이었다가 불법으로 바뀐 것이고, 심지어 정부가 과거에는 낙태를 나서서 권장했었다는 것이다. 

낙태죄는 1953년 제정됐지만 인구증가를 방지하기 위해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키우자’던 1900년대 후반에는 실제로 적용되지 않았다. 아이를 대책 없이 많이 낳는 것이 가정 속 경제난의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학회에 따르면 정부는 산아정책의 수단으로 임신초기에 임신중절 수술을 원하는 여성에게 시술비를 지원하기도 하며  ‘낙태버스'를 전국에서 운영하기도 했다. 

1973년에는 임신부나 배우자가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유전병이 있는 경우, 또 강간이나 근친상간으로 임신을 했으면 임신 28주일까지 합법적인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됐다.  정부는 80년대까지 꾸준히 합법적인 임신중절의 사유를 확장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낙태는 사회 속에서 위화감 없이 자리 잡을 수 있었고 낙태가 죄라는 인식 또한 거의 없었다. 자식이 있는 기혼 여성들은 터울 조절을 하기 위해, 혹은 이미 자식을 많이 낳아서 아이를 ‘지우는’ 경우가 많았다. 남아선호사상이 극심했던 만큼 이러한 사회 분위기 아래 여아감별낙태가 성행했다.  물론 여아감별낙태와 그로 인한 성비 불균형은 낙태가 불법이어야 할 이유로 비중 있게 거론된 적이 없다. 


 

낙태죄에 반대하는 여성들(출처: 여성신문)

태아의 생명권

대한민국 정부가 낙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출산율 감소로 인해 인구증가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을 때다.  정부는 직접적으로 저출산 극복을 위해 낙태를 불법화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계획이라는 명목 아래 낙태를 권장하던 우리 정부가 저출산에 발맞춰 낙태를 죄로 취급하게 된 현상은 상당히 노골적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낙태죄에 관한 결정에 ‘태아의 생명권'이 진정한 이유였는지 의심된다. 

나라가 필요할 때는 권장되고 방해될 때는 죄가 될 수 있는 것이 낙태라면 ‘생명권'이라는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 대한민국의 낙태 관련 법률은 도덕상의 논쟁보다 정부의 인구정책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지난달 내려진 낙태죄 유지 결정도 어떻게 ‘태아의 생명권'을 존중하는지 불분명하다. 정부는 낙태가 ‘인간존엄에 반하고' 태아의 생명권이 ‘어떤 권리와 비교할 수 없이' 귀하다면서 또 그 생명의 경중을 재고 있다. 태아의 생명이 소중하면 모든 태아의 생명이 평등하게 소중할 터인데 어떤 경우에는 28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또 다른 경우에는 14주까지 허용하는 것 자체가 모순적이다.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태아는 존중받아 마땅한 생명인데, 평소에는 생긴 지 14주만에 생명으로서의 소중함을 얻지만 성폭행으로 생기면 28주에 그 존엄성을 얻는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새 법안의 어떤 부분이 태아를 생명으로서 대우하고 있는지 불분명하다. 그저 낙태한 여성의 대한 처벌만이 현실로 남을 뿐이다. 

이전부터 대한민국은 ‘낙태여성'에게만 한정으로 태아를 생명으로 보는 경향을 보였다. 현재 우리나라 법에 의하면, 임산부를 때려 아이가 유산된 경우 가해자에게 낙태죄가 적용되지 않는다. 태아에 대한 살인, 상해죄 또한 적용되지 않는다. 임산부에 대한 상해죄만 적용될 뿐이다. 이는 가해자가 아이를 유산시킬 의도가 있었어도 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법률은 태아를 살아있는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선 진통이 시작된 후의 태아만 생명으로 여긴다. 대한민국의 법률 아래 태아의 생명권은 그 어떤 권리와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태아는 생명이 아니며, 낙태 당한 태아는 생명이다. 태아는 핑계다. 낙태죄의 주목적은 태아보호가 아닌 여성처벌이다. 

낙태죄 유지를 위한 고군분투 

한국 경향신문에 따르면, 낙태죄 유지는 “청와대 의지가 강했다" 같은 기사는 법무부의 권고안이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청와대의 단독적인 의지대로 낙태죄를 유지하며 임신 14주까지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것으로 미리 정해진 것이라 전했다. 법무부는 낙태죄 전면 폐지 입장이었고 임신 주수에 따라 낙태죄 처벌 여부를 정하지 말라는 내용의 권고안이 발행됐다 한다. 

반면,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가 이런 일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없다며 이를 부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전에 스스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 선언했기에 청와대에 관한 이 보도는 더 암울함을 자아낸다.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이번 낙태죄 유지 결정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치고는 상당히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한겨레신문이 공개한 지난 8월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등 5개 부처가 참여한 국무조정실 회의내용을 정리한 자료에 의하면 해당 회의는 “임신중지를 태아 살해행위로 규정"했고, 낙태에 대한 과태료 처분에 국민 정서상 수용 곤란을 예상하며 형사처벌을 유지하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낙태를 원하는 여성의 상담과 숙려기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간주했다. 낙태죄 유지 결론에 대한 “여성계 반발"을 예견하며 “여가부에서 완화 노력"을 하라는 향후 계획도 세웠다. 회의 결과가 “안전한 임신중지”를 제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려는 개정안의 취지에 정반대된다는 의견이 있었다. 

학생기자 김지영(SA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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