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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144] 아주 긴 변명

[2022-05-28, 06:34:37] 상하이저널
니시카와 미와 | 무소의뿔 | 2017.02.
니시카와 미와 | 무소의뿔 | 2017.02.
동경 이케부쿠로의 한 서점에서 만난, 수채화 같은 영화 장면을 표지로 한 소설. 내가 알지 못하는 상들과 영화들을 언급하며 작가가 유명하다는 것을 어필하지만 난 어느 것도 알지 못한다. 언어의 섬에서 산 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일까.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니시카와 미와의 책을 몇 페이지 서서 읽다가 비싼 책값에 순간 망설였지만, 집으로 가져와서는 소파와 일체가 되어 단숨에 읽어 내려간다. 오랜만이다. 책 한 권을 읽어 내려가는 것이.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니시카와 미와는 언제나 각본을 스스로 쓰고 영화화하고, 시나리오를 소설로 내는 작가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소설은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유명 작가 기누가사 사치오가 아내의 죽음에 아무 감정의 동요도 없고 눈물도 흘리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출판사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십여 년간 아내의 정신적 물질적 지원 끝에 소설가로 성공한 그는, 쓰무라 케이라는 필명으로 소설가가 되어 유명해진 이후로는 아내와는 아무런 교감이 없는 데면데면한 삶을 산다. 어느 날 일 년에 한 번씩 아내가 친구와 함께 하는 스키여행을 간 날 애인과 함께 있다가 아내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받는다. 그는 유품들이 뒤섞여 있는 속에서 아내의 물건이라고는 어느 것 하나도 찾아낼 수 없는 자신에게서 괴리감을 느낀다. 무엇이 그토록 사랑해서 결혼한 아내 나스코와의 사이를 이토록 멀어지게 했나, 왜 그녀의 죽음에 아무런 동요 없이 담담하기만 한가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 

자식이 생긴 뒤에도 사람의 부모가 되지 못한 세상의 수많은 덜 자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부모가 되길 포기한 그는, 같이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를 당한 아내의 친구 유키의 가족과 만나면서, 그녀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조금씩 자신을 재생해 가기 시작한다. 아내가 죽고 나서야 다시 아내를 사랑하기 시작하고 아이들을 통해 어른이 되어가면서 자신도 한 가족의 일부가 되고 싶은 간절함을 느끼게 된다. 장례식에서 아무 표정 없이 무덤덤하던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슬픔 대신 자신을 혼자 두고 가버린 아내에 대해 격렬히 화를 표출하고 나서야 서서히 마음속에 그리움과 슬픔의 자리를 내어줄 줄도 알게 된다.

이젠 조금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같이 살아가고 있는 부부들, 자식을 낳았지만 진정 어른이 되지 못하고 우리 사회의 많은 비극을 일으키는 어른들……. 소설은 너무도 섬세하고 잔잔한 눈길로 우리의 삶을, 오늘날 일본 사회의 흔히 볼 수 있는 부부의 현실을 아이의, 아내의, 남편의 눈으로 보여준다. 추운 겨울 바다 풍경 같은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내가 사라지면 내 배우자는 진정 눈물을 흘릴 것인가? 조금은 사랑의 마음을 느낄까? 아이들은? 나 자신은 덜 자란 어른이 아니던가 하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져본다. 그녀의 영화도 찾아보아야겠다. 가족은 여러 형태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해본다. 

이현영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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