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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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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한 해를 보내기 전 <코스모스> 읽기 도전을 시도했었다. 4장까지 읽고 나서, 읽었으나 읽은 게 아님을 인정하고 일보 후퇴하게 된다. 그리고 <코스모스>를 읽기 위한 워밍업으로 선택한 것이 SF소설이었다.
김초엽의 돌풍에 대해 소문으로 알았지만, SF에 관심이 없었고 그렇게 스쳐 지나갔었다. 그러다가 과학입문서(?)로 그녀의 단편집 ‘방금 떠나 온 세계’를 골랐다. 단편 모음집인 이 책을 읽으며 김초엽 작가의 상상력에 반해버렸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상상력 계에서 균형 잡힌 아름다움을 지녔다고 표현하고 싶다. 몸으로 비유하자면, 유연성과 근력을 두루 갖춘 상상력이라고나 할까. 상당히 짧은 시간에 많은 작품이 출간되어 (다작하는 작가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며 김초엽의 이야기보따리가 꽤 크다는 걸 확인했다.
이 책에는 7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마지막 단편 “캐빈 방정식”이 SF요소를 고려 할 때 제일 재미있게 읽혔다. 그리고 내 마음에 가장 훅 들어온 이야기는 “오래된 협약”이었다.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결말이 어떤가 보다는 과정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는 서사 중심이라고 생각해 대략의 줄거리를 써 보려 한다.
[책을 읽기 전에 결말을 알고 싶지 않은 분들은 여기서 글 읽기를 멈춰주세요.]
‘이정’이란 지구인이 ‘벨라타’ 행성을 방문해 사제 ‘노아’와 우정을 쌓게 된다. 벨라타인들이 지구인과 다른 점은 수명이 30년 정도로 짧고 생애 마지막 5년은 ‘몰입’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 몰입의 과정은 신경 손상과 기억력 감퇴를 동반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또 하나는 ‘오브’인데 이것은 먹어서도 안 되며 만져서도 안 되는 신앙의 영역으로 존중받는 물질이다. 지구에서 온 이정은 벨라타 대기에 오브가 만들어내는 ‘루티닐 ‘이라는 신경독성 물질이 ‘몰입’을 일으키는 것을 밝혀내고 노아에게 오브를 제거하면 고통도 사라지고 수명도 길어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벨라타인들 중 사제집단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인간들이 처음 벨라타에 불시착했을 때 오브들은 인간들이 지극히 생태 의존적 생물이고 폭력적이며 비도덕적이나 자아를 갖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존재, 한마디로 불청객으로 판단했었다. 그러나 연민을 할 줄 아는 오브들은 공존을 선택한다.
P223 “우리의 긴 삶에 비하면 너희의 삶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 그러니까 우리가 행성의 시간을 나누어 줄게. “
오브는 인간에게 삶을 주기 위해 스스로 멈춤을 선택했다. 그 덕분에 대기 중 루티닐 양이 줄어들어 인간이 30년 정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브는 이 행성의 개체일 뿐 아니라 행성 그 자체여서 오브의 절멸은 벨라타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인간과 오브는 ‘오래된 협약’을 맺게 되었다.
사제집단만이 이 진실을 알고 있고 오브를 인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신격화했다. 노아는 쌍둥이 언니가 루티닐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고 본인도 몰입을 겪고 죽을 것임을 알지만 이 협약을 지키려 한다.
이 단편에서 “앎은 우리를 구원 하지 않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아름답고 푸른 행성인 지구에서 나의 살아가는 방식은 불청객의 행위임을 자각했다. 지구의 생명체들은 인간이 자신과 같은 생명체라는 단지 그 이유 하나로, 더불어 살고자 넘치게 노력하고 있는건 아닐까?
이제 우리도 유효한 협약이 필요하다.
최수미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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