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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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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이방인>은 얼마 전 화제가 된 드라마 <안나>의 원작 소설이다. 전체 드라마는 보지 않고 짤막한 영상 클립으로 접했는데, 주인공 “이유미”의 모티브를 따왔을 뿐 소설과는 내용이 달랐다. 이방인과는 친밀할 수 없기에 ‘친밀한 이방인’이라는 제목은 흥미롭다.
이 소설은 주인공 이유미와 그를 쫓는 작가 “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주인공 이유미는 가짜 여대생으로, 유학파 피아노 학원 강사로, 대학교 평생교육원 강사로, 또 요양병원 의사로 살아간다. 부모의 형편에 맞지 않는 무리한 뒷바라지, 카드 빚 그리고 거짓말들. 아슬아슬 줄타기 하며 그녀는 어쩌면 허상과도 같은 것들을 기반으로 자신이 원해왔던 모습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가짜 행세는 늘 오래가지 못한다. 도망치던 중 남자 행세를 하며 소설가 이유상이 되어 화장실 한구석에서 주운 책을 베껴 <난파선>이라는 작품도 출판한다. 난파선은 "나"가 쓴 소설로 이유상의 연인이었던 "진"이 나와 닿게 되는 접점이 된다. "나"는 거짓으로 인생을 꾸려온 이유미의 행적을 좇지만, 친밀했던 사람들에게서 이방인을 느낀다. 황혼 이혼을 맞닥뜨린 그녀의 부모 모습 또한 자식으로서 낯설기만 하다. 자신의 삶은 진짜 삶이 아니라는 혼란스러움이 더해진다.
이 소설에 “손에 땀을 쥐는 반전과 대반전” 혹은 “속고 또 속는!” 등의 극적인 묘사는 어울리지 않는다. 지극히 잔잔하고 현실적이다. 이유미 같은 인물을 우리가 살면서 만날 확률은 높지 않겠지만, "나"가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종류는 다르더라도 누구나가 느끼지 않을까? 그 누군가는 굳이 나를 속이려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보고 싶어 하든 안 하든,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든 말든, 표면적인 모습과 속 모습은 너무 다를 수 있으니까.
나는 동료 F를 떠올렸다. 그는 스페인에 사는 이탈리아인으로 회사 내에서 누구나 그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이미지는 누군가에게는 오타쿠라고 불릴 정도로 괴짜였고 나 역시도 그를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는데 굳이 말하자면 멋있고 매력적인 사람이라기보다는 착하지만 신기하고 재미있고 다소 별난 사람이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사진들도 인터넷만 하는 괴짜에 가까운 이미지를 줬다. 우리는 그를 꽤 잘 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많이 만났으며 업무 때문에 매일 이야기를 나눴다. 내 동료 K도 그런 그를 그저 그런 이상한 괴짜라고 생각했는데, 스페인에 가서 그의 가족들을 만나고 그가 낯설었다고 한다. 그는 자기 와이프 앞에서 믿음직한 모습을 보였고, 취미로 가드닝을 하고 예전에는 군에도 있었다고 했으니까. F는 그저 우리에게는 회사에서 그의 역할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줬고, 다른 사람이 보는 그는 또 다른 모습이었던 것이다.
나도 "나를 꽤 잘 안다고 생각하는" 누군가에게는 친밀한 이방인일까? 결국 타인의 삶은 내가 정의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미의 이야기조차도 이유미 자신이 털어놓은 것이 아니고 소설 속 "나"에 의해 이야기되는 것이니까.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삶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이 구절을 보며, 진짜 삶은 타인이 정의할 수 없으며 이유미의 삶은 적어도 이유미에게는 진짜였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들었다.
잠이 오지 않는 여름밤, 손에 쥐고 단숨에 읽기에 충분히 몰입감 있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박윤정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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