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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쌤 교육칼럼] 천재의 딜레마

[2023-09-02, 06:26:13] 상하이저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화제다. 최초의 핵폭탄 개발 프로젝트를 다룬 이 영화는 말 그대로 “폭발”했다. 러닝타임 180분이 훌쩍 흘러가는 동안 영화는 많은 질문들을 던진다. 오펜하이머는 과연 누구인가? 전쟁을 종식시킨 평화의 수호자인가,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선사한 세상의 파괴자인가?

[영화 '오펜하이머' 장면]

 

“과학자는 개발을 하고 정치가는 그것을 어디다 쓸지 결정하지.”

과학이 가치중립적(value-free)이냐 가치 판단적(value-laden)이냐의 논쟁은 차치하고라도, 핵무기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과학자가 그 결과로 인한 무고한 희생에 대해 과연 윤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 영화의 원작인 오펜하이머의 전기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가 상징하듯, 신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준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간이 쪼이는 형벌을 받듯이 오펜하이머 역시 죄책감에 시달린다. 노벨화학상(1919)을 받은 프리츠 하버도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군으로 참전한 아프리카 병사 15,000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독가스를 개발했다. 그뿐 아니라 같은 연구소에 근무하던 후배 과학자인 오토 한(노벨화학상 1944)도 가스 공격전에 참여시킨다. 하버의 부인은 항의의 뜻으로 자살했다고 한다. 과학자가 아무리 자기 전문 분야에서 순수하게 연구만 한다고 해도 자기 뜻과 상관없는 정치 논리에 의해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될 수 있다는 점을 역사는 말해준다.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폭발의 효과는 좀 기다려 봐야 하겠지만, 어쨌든 일본은 혼이 좀 났겠죠?”

나치독일보다 먼저 핵무기 개발을 하기 위해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는 13만 명 규모에 20억 달러(2023년 기준 환율로 대략 40조 원)의 국방예산이 들어간 거대한 국책사업이었다. 이 초유의 군사 작전의 총책임자는 그로브스 육군 소장이었지만,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대기의 연쇄 폭발로 인류의 공멸이 가능하다는 가설이 제기되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커져가지만, 자신의 주도하에 진행된 프로젝트가 좌초될 경우 자신을 믿고 따라온 구성원들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윤리적 고민을 앞서게 된다. 원폭 투하 성공 자축연 자리에서 마치 비명처럼 들리는 관중의 환호 소리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구성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농담을 던지는 오펜하이머의 모습은 리더가 갖는 역할과 책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어쨌든 그는 연구실에서 논문 몇 편을 남기고 이름 없이 사라지는 대신,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수장으로서 활약했고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명성 혹은 오명을 남겼다. 

“그것은 자네를 위한 게 아닐세. 그들 자신을 위한 거지.” 

어쩌면 이 영화는 천재에게 세상은 어떤 곳인가, 천재의 삶은 어떤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보여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펜하이머는 뛰어난 천재 과학자이고 맨해튼 프로젝트의 리더로서 능력을 보여주지만, 개인적으로는 사생활이 복잡하고 인간관계도 매끄럽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교수를 독살하려고 하기도 했고, 유부녀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 후에도 전 애인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등 윤리적인 문제도 있었다. 미국 원자력위원회 의장 스트로스를 불필요하게 자극하여 오펜하이머에게 모욕당했다고 느낀 그로 인해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어쨌거나 과학이나 철학 등 사고와 이론 분야에서 천재성을 보이는 사람의 경우, 밤하늘의 별을 보다 발 밑의 우물에 빠지는 우를 범할 경우가 많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그런 지점을 보여주는 건 아닌가 싶다. 남다른 능력을 지닌 자부심에서 남다른 사명감을 갖게 되어 특별한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위험에 빠지게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밤하늘의 별도 보고 발 밑의 구덩이도 살피고’ 

부모들은 한 번쯤 내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기대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평범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들도 있겠지만, 교육열이 높은 한국에서는 영재교육이 꽤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 서울과학영재고 백강현 사례에서 보이듯 자신만의 세계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어 하는 천재들에게 세상은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다.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도 없고 주변의 과도한 기대에 의한 부담,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 또래 집단과의 갈등, 진로 문제에 대한 고민 등 천재로 태어난 사람들 나름의 고통도 있을 것이다.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가르치듯 남들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는 사실에 그리 기뻐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저 묵묵히 차근차근 자신과 주변,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는 데 집중하면서 관리를 하는 게 슬기로울지 모른다. 그러나 밤하늘의 별 보기와 같은 특별한 취미를 가진 천재들은 이런 평범함에 익숙해지기 힘들 수도 있다. 

뛰어난 천재, 세상을 이끄는 리더, 큰일을 해낼 인재를 길러내고 싶은 부모와 교사들은 그들의 딜레마를 이해하고, 도전에 따르는 위험을 관리하는 능력도 함께 길러주어야 할 것이다. 
 
김건영
-맞춤형 성장교육 <생각과 미래> 대표
-위챗 kgyshbs   
-thinkingnfutur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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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째 아이들과 책 읽고 토론하며 글을 쓴다. 청소년들을 위한 진로 코칭과 상담을 병행하고 있다. 청소년 인문캠프, 어머니 대상 글쓰기 특강 등 지역 사회 활동을 해왔으며, 도서 나눔을 위한 위챗 사랑방 <책벼룩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상하이저널과 공동으로 청소년들의 진로탐색을 위한 프로젝트 <청미탐>을 진행하고 있다. 위챗 kgyshbs / 이메일 thinkingnfuture@gmail.com / 블로그 blog.naver.com/txf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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