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 농업인의 날, 보행자의 날 등 다양한 기념일로 알려져 있지만, 이보다 더 오래 전인 1973년부터는 광고인들의 자부심을 향상시키고, 광고에 대한 공중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광고의 날'로 지정되었다.
'광고의 날'의 기원을 추적하려면 1960년대의 광고 시장 상황을 되돌아봐야 한다. 그 시절, 주요 광고 분야는 1970년대 초까지 제약이었는데, 합동광고의 보고서에 따르면, 1969년에는 동아제약, 한일약품, 한독약품, 유한양행, 종근당, 영진약품, 일동약품, 한국화이자 등이 주요 광고주로 활동하고 있었고, 제약 분야를 제외한 회사들은 해태제과와 당시 낙희(현재는 LG)화학 두 곳이 전부였다.
제약업계의 주요 광고 책임자들은 1966년에 '한국의약품 PR클럽'이라는 광고주협회 성격의 조직을 설립하는 중요한 일을 담당했다. 이 조직의 설립 목적 중 하나는 언론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광고 비용에 대응하여, 광고주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광고 비용에 대한 공정한 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PR클럽의 활동은 다양했는데, 그 중에서도 1968년과 1970년에 신문과 잡지의 구독 현황을 조사하는 일을 진행했다. 이런 실태조사는 광고의 효과를 측정하고, 광고 비용을 책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또한, 이 PR클럽은 창립 총회에서 광고주협회의 설립, ABC협회의 추진, 그리고 광고 관련 주요 당국과의 협의 등을 사업 계획으로 제안하였다. 이들의 제안은 광고 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광고주와 광고 산업 간의 협력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후에 한국광고연구협의회의 설립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 조직은 광고 산업의 발전을 위해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고, PR클럽의 활동이 이 조직의 설립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에게 있어서 광고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졌다. 이 기간에 광고회사들이 연이어 설립되었고, 신문과 잡지의 발행량이 증가했다. 또한, 민영 라디오와 민영 TV가 60년대 중반에 개국하면서 새로운 광고 매체가 등장했는데, 특히 1969년에는 MBC가 개국하면서 두 개의 TV 채널이 경쟁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광고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였고, 신문들 사이에서는 광고 배정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한국광고단체연합회(현재 한국광고총연합회)의 30년사를 보면, 당시 신문광고 거래는 꽤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확정되지 않은 광고를 먼저 게재한 뒤 광고주와 협상하는 경우, 게재한 광고료의 일부를 할인하고 나머지를 지불하는 경우, 요청하지 않은 광고를 무단으로 게재하는 경우, 광고담당자에게 광고비를 반환하는 리베이트 등의 상황이 빈번히 벌어졌다.
이런 복잡한 광고 환경은 광고 산업의 정립과 광고 단체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광고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단체의 설립 움직임이 활발해졌으며, 이는 매체들에게 큰 관심사가 되었다.
11월 11일은 모든 광고 분야와 광고인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우리가 평소에는 쉽게 지나쳤던 광고들을 한번씩 곱씹어보며 수많은 광고인들의 노고를 생각해보면 어떨까?
학생기자 이예준(진재중학 11)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