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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랑의 거리’라고 불리는 톈아이루(甜爱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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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처럼 달콤한 사랑의 거리를 기대했기에 톈아이루에 도착했을 때 떠오른 첫 단어는 ‘실망’이었다. 상하이에서 가장 로맨틱한 거리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거리는 헐벗은 느낌을 주었고, 사람이 꽤 많이 있었음에도 쓸쓸했다. 화려한 옷과 소품을 잔뜩 휘감고 있는데도 어쩐지 촌스러운 시골뜨기 아낙 같은 모습이랄까.
허탈한 마음으로 거리를 걷다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이런 게 바로 사랑이지.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실망할 리 없겠지만, 기대 없이는 사랑에 빠질 수 없다. 기대 덕분에 사랑하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기대는 언젠가 무너진다. 순식간에 무너지든, 아주 서서히 무너져 내리든, 속도와 모습은 달라도 반드시 무너진다.
[사진=톈아이루(甜爱路)]
부득이하게 남편과 몇 달을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 하필 떨어져 있는 동안 결혼기념일이 다가왔고, 남편이 보낸 꽃다발 속 작은 카드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페이스북에 그 이야기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짧게 올렸는데, 올라온 댓글을 보고 놀랐다.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넘은 부부가, 더구나 청소년 자녀를 둔 부부가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게 누군가에게는 충격일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댓글의 수위는 아슬아슬했고, 배우자에 대한 불평과 원망이 이어졌다. 한동안 정신이 아득해 답글을 달지 못했다.
사실 꽃가게 연락처를 남편에게 알려준 건 나였다. 결혼 2주년 때 이미 남편은 기념일을 까맣게 잊은 전적이 있다. 잔뜩 기대했던 나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고, 날 선 말 한마디는 싸움으로 이어졌다. 해마다 반복되면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생일이나 기념일이 다가오면 그에게 살짝 귀띔을 한다. 무엇을 받고 싶은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싶은지 자세히 그림을 그려 주면서. 우리가 기필코 지켜내야 하는 건 사랑이지 자존심이 아니니까.
[사진=톈아이루(甜爱路)]
“당신이 안개꽃 섞는 거 싫어한다고 말했는데, 또 잊어버렸다.”
“괜찮아, 계속 얘기해 줄게.”
서로가 완벽하게 마음에 들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마음에 들고 싶어 계속 노력하는 것이다.
“결혼과 시와 신은 독법이 같은 책이다. …… 이해하려고 결단해야 이해할 수 있다.”
(조이엘 <아내를 우러러 딱 한 점만 부끄럽기를> 중)
거리 양쪽으로 늘어선 벽마다 낙서가 빼곡하다. 수많은 이름과 하트를 보며 천천히 걸었다. 함께 간 그의 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꼭 잡고서. 톈아이루를 연인과 함께 걸으면, 사랑이 이뤄져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거리를 수없이 같이 걸어도, 두 사람 이름을 지워지지 않는 하트로 꽁꽁 묶어 두어도 헤어진 커플은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연인의 손을 붙들고 그 거리로 달려가 벽의 빈틈을 간신히 찾아 서로의 이름을 함께 적는 건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사랑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사랑을 지켜주는 건 톈아이루의 전설이나 마법이 아닌, 사랑하겠다는 결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