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어원
문득 '공부'라는 단어의 어원이 궁금했다. 네이버에 ‘공부 어원’을 검색하니 ‘어원을 공부하여 영어 단어를 쉽게 외우는 법’이 나왔다. 내가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다. 다시 구글에 ‘study(공부), etymology(어원)’를 검색하니 ‘열정(zeal)과 공들인 적용(painstaking application)’이란 설명이 나왔다. 검색 엔진이 보여주는 검색 결과는 그 사회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내용을 기초로 검색되는 결과를 '최적화'한 것이 먼저 제공되기 때문이다. '공부 어원'의 검색 결과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요령'의 숙달에 치우친 공부를 해왔는지 보여준다. 조금 보태어 해석하자면 '공부가'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는 몰라도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기 위한 '요령'에는 초미의 관심을 보이는 사회가 된 것이다.
“왜 아이비리그에 가려고 하니?”
이런 현상은 내가 교육 현장에서 자주 받는 질문과 연결된다. “어떻게 하면 선생님처럼 아이비리그에 갈 수 있나요?”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받으면 난 이렇게 되묻는다. “왜 아이비리그에 가려고 하니?” “왜”라는 질문 안에는 사실 내 답이 들어 있다. ‘목적’이 뚜렷한 학생이 아이비리거가 된다. 이때 ‘목적’은 아이비리그에 가고 싶은 이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를 ‘공들여 적용할’ 대상이 되는 인생의 목적을 말한다. 목적이 뚜렷한 학생들은 스스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스스로 찾아낸다. 아이비리그라는 교육시스템은 그들 인생의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하나의 수단, 길이 되어줄 뿐이다. 그리고 미국의 명문이라 불리는 아이비리그 학교들도 인생의 목적을 찾은 학생들을 선발하고 싶어하며, 그런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매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 한국 대학
한국의 대입 시스템은 어떤가? ‘조국 사태’라 불리는 입시 비리가 불거진 이후, ‘대입 공정성 강화’를 위해 자기소개서 및 비교과활동이 평가 대상에서 배제됐다. 학생이 개인적으로 어떤 봉사활동을 해왔는지, 어떤 책을 읽어왔는지, 어떤 진로를 희망하는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점수로만 학생을 선발하게 됐다. 지금 한국의 대학은 더더욱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됐다. 학생들은 주체적으로 인생을 헤쳐 나갈 길을 찾는 대신, 1점이라도 점수를 올리기 위한 ‘요령의 달인’이 되고 있다. 대학은 손발이 다 잘린 채, 점수에 맞춰 들어오는 학생들을 일정한 순서까지 받아주는 문지기 역할만 하고 있다.
“서울대 보다, 외국 대학으로 가세요”
대학은 교과과정 내내 점수 잘 받는 법만 연습해온 학생들을 데리고, 세계를 뒤흔들 혁신적인 연구를 할 수 있을까? 인생의 목적을 잊도록 강요받아온 학생들은 행복한 대학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최근 만난 서울대학교의 모 교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국으로 대학 갈지, 외국으로 갈지 고민하는 학생이 있으면 외국으로 가라고 하세요. 내가 서울대학교 다닐 때만 해도 교수님이 어려운 문제를 내시면 여럿이 모여 몇 시간 토론해서 답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인터넷에서 답지부터 찾고 답에 과정을 맞추려고 합니다. 안타까워요.” 공부의 목적을 잊은 학생들이 늘어가고 있는 안타까움을 에둘러 지적하신 말씀이었다.
‘표준화’된 인재가 설자리는 없다
비단 교육의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인생의 목적’을 잊은 사람들이 많다. 교권 붕괴, 갑질 문화, 사회 분단 등 모두 삶의 목적을 잊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제다. 인생의 목적과 수단을 혼돈한 사건들이다. '평균의 종말'의 저자 토드 로즈에 따르면 AI의 발전이 불러올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표준화’ 된 인재가 설 자리는 없다. 개인성을 최대한 존중함으로써 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가로서 인생의 목적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 자신만의 목적을 찾아 헤매는 학생을 응원하는 것, 그리고 인생은 혼자만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는 것은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시작일 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유호연(칸에듀케이션그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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