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박물관에서 韩中 교류 흔적 찾기
박물관을 탐방하고 감상하는 법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는 얼마나 중국의 역사와 유산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아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을까?
박물관 리터러시(literacy)는 이러한 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관람 태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을 넘어, 전시된 유물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해를 심화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국 박물관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하며, 동시에 중국 역사문화와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본 칼럼에서는 화동 지역의 박물관과 전시를 돌아보며 박물관 문해력을 키워 그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6 저장성박물관 지장관(之江馆) 송운(宋韵)문화관 전시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년 계획을 써 내려간다. 조금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시간을 내어 글을 쓰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독서와 작문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활동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문자를 통해 사유를 공유하고, 학습한 내용을 발전시켜 나가는 이러한 행위 덕분에 인간의 문화는 지금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 믿는다.
동양에서 문인의 삶이 가장 찬란했던 시기를 꼽으라면 대부분 송나라를 떠올릴 것이다. 송나라는 학문과 예술이 융성했던 시대로, 문인들은 사유와 창작을 통해 문화적 절정을 이루었다. 항저우시는 그 문인의 시대였던 남송의 수도가 자리했던 곳이다. 송나라 문인들의 삶을 돌아보며, 그들의 학문과 철학에서 새해의 영감을 얻고자 발걸음을 송운문화관으로 옮겼다.
[사진=저장성박물관 지장관 전경]
천년 넘게 사랑받은 주자(朱子)표 독서법
효과적인 독서법이란 무엇일까? 이 질문은 오늘날만의 고민은 아니었던 듯 하다. 송대 유학자 주희(朱熹)는 독서에 관한 그의 철학을 제자들에게 강독하며 깊이 있는 학문적 태도를 강조했다. 그의 제자들은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주자독서법(朱子讀書法)>으로 편찬했다. 특히 원대 학자 정단례(程端禮)가 이를 6가지 독서법으로 제시하였다. 이 6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학문은 기초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심화해야 한다(순서점진, 循序渐进).
둘째, 반복해서 읽고 깊이 사유하여 글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고 내면화해야 한다(숙독정사, 熟读精思).
셋째, 선입견 없이 겸손한 자세로 글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허심함영, 虚心涵泳).
넷째, 배운 내용을 삶에 적용하며 실천과 자기 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절기체찰, 切己体察).
다섯째, 꾸준히 노력하며 인내심을 갖고 학문에 정진해야 한다(저긴용력, 著紧用力).
여섯째, 경건한 태도와 끈기로 학문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고 끝까지 실천해야 한다(거경지지, 居敬持志).
천년이 넘은 이 주자의 독서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을 넘어, 학문을 통해 삶을 성찰하고 실천으로 이어지는 길을 제시한다. 조금은 고루한 듯 보이지만, 독서의 기본 원칙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지침으로 여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사진=저장성박물관 소장 ‘주자독서법(朱子讀書法)’의 탁본]
문방사구를 대하는 방식
송대 문인들이 학문에 대해 가졌던 태도는 문방사구(文房四具)와 같은 사물에 대한 애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及斋(급재)’라는 명문이 새겨진 벼루였다. 이 벼루를 보며, 어릴 적 필기구를 정성껏 관리하고 이름표를 붙이며 애정을 쏟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용하는 물품 하나하나에도 나만의 정신과 의미를 담고 싶었던 그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다.
이 벼루는 진화시(金华市) 남송 시대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서재명을 새긴 벼루를 무덤까지 가져간 어느 문인의 물건이다. 남겨진 벼루를 통해 그가 글과 학문에 대해 가졌던 열정과 문인으로서의 삶에 충실했던 그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벼루는 단순히 글을 쓰기 위한 먹을 가는 실용적인 도구를 넘어, 그의 학문적 고민과 성찰의 시간을 곁에서 함께한 벗이었다. 이런 물건에서 느껴지는 정성과 열정이야말로 송대 문인들이 학문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전시 내부]
[사진=저장성박물관 소장 ‘급재’명 벼루]
꽃꽂이와 병화(瓶花): 학문과 미학의 만남
송대 문인들에게 꽃꽂이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 학문적·미학적 세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활동이었다. 특히 병화(瓶花)는 각기 다른 도자 화병에 적합한 꽃을 선별해 꽂는 행위로, 고도의 심미적 감각과 박물학적 지식을 요구했다. 꽃의 선택과 화병의 재질, 형태에 따라 문인의 안목과 교양이 드러났으며, 이는 자연과 사물의 조화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흥미롭게도 꽃꽂이는 여성의 활동이 아니라 남성 문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러한 병화 문화는 조선에도 이어졌다. 조선 중기 문인들은 병화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자신들의 미학적 감각과 결합시켰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문인들이 감상했던 명나라 문인 원굉도(袁宏道)의 병화 관련 서적은 조선 초기 허균(許筠)을 통해 소개되었고, 병화를 주제로 한 회화와 물질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시된 <상산사호회창구로도(商山四皓會昌九老圖)>에는 머리에 꽃을 꽂고 있는 남성 문인 문화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조선 문인들 역시 송대 병화의 영향을 받아 꽃과 화병을 통해 교양과 심미적 감각을 표현했으며, 이는 궁중의 채화(綵花) 같은 전통으로 발전되었다. 이렇게 병화는 학문과 예술이 결합된 문인의 삶을 다각도로 엿볼 수 있는 하나의 통로이다.
[사진=저장성박물관 소장 길주요병]
[사진= 상산사호회창구로도(商山四皓會昌九老圖)]
박물관을 나서며
저장성박물관 지장관(之江馆)은 11년간의 기획 끝에 2023년 8월 정식 개관한 박물관으로, 항저우시에 위치하고 있다. ‘천원지방(天圆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전통적 철학을 반영하면서 공간 사이의 연결성을 강화해 과거와 현재의 이어짐을 표현하고자 했다.
나에게는 이 박물관이 항저우와 강남 사람들의 유연함과 개방성을 한눈에 담은 공간처럼 다가왔다. 특히 세 번에 걸친 방문 동안, 큼직하게 뚫린 원형 창의 인상이 점점 더 깊어졌다. 자연채광을 극대화하면서도 공간에 독특한 분위기를 더하는 이 창은 건축의 미학적 기능뿐 아니라 박물관의 상징적 역할에도 톡톡히 기여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송운문화관은 남송 시대 문인들의 삶과 학문적 태도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새해를 맞아 독서와 글쓰기에 영감을 찾고자 한다면, 이곳은 반드시 경험해 봐야 할 특별한 장소다. 문인의 철학과 미학이 살아 숨 쉬는 이 공간은 당신의 사유와 창작에 깊이를 더해 줄 것이다.
[사진=박물관 내부 원형 창]
•주소: 浙江省杭州市西湖区碧波路之江文化中心
글·사진_ 성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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