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박물관에서 韩中 교류 흔적 찾기
박물관을 탐방하고 감상하는 법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는 얼마나 중국의 역사와 유산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아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을까?
박물관 리터러시(literacy)는 이러한 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관람 태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을 넘어, 전시된 유물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해를 심화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국 박물관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하며, 동시에 중국 역사문화와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본 칼럼에서는 화동 지역의 박물관과 전시를 돌아보며 박물관 문해력을 키워 그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5 상하이박물관 인민광장관 이집트 특별전시
얼마 전,시간이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겨울. 한 해의 끝자락에 서면 누구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이룬 것보다는 미처 마무리되지 못한 계획들이 아쉽고, 흘러가는 시간은 야속하기만 하다. 내일은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또 새로운 해가 시작될 것을 알면서도, 12월이 다 가기 전에 무엇이든 더 이루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이런 복잡한 마음을 안고 상하이박물관의 이집트 특별전을 찾았다.
[사진=상하이박물관 전경]
상하이박물관은 최근 푸동에 동관을 새롭게 개관하며 인민광장 본관을 특별전시관으로 전면 개편했다. 그 전시중 하나로 선택된 것이 이집트 정부와 협력해 기획한 야심찬 프로젝트, ‘피라미드의 정점: 고대 이집트 문명전(金字塔之巅:古埃及文明大展)’이다. 이번 전시는 특히 아시아 최초로 700여 점이 넘는 유물이 공개되었으며, 지난 10월 말 개관한 이집트 대국립박물관과 시기를 맞추어 전시가 선보인 점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더한다.
[사진=동시기 황하유역의 마가요문화 토기]
[사진=파라오와 배가 새겨진 토기]
이집트와 중국: 두 문명의 만남
이집트 문명은 5천 년이 넘는 역사로 우리에게 신비롭고 비현실적으로 다가오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상대적으로 친숙한 신석기 시대 중국의 마가요(馬家窯) 문화 토기를 함께 만날 수 있어 그 거리를 좁혀준다. 마가요 문화는 기원전 5800년부터 4100년 사이 황하 유역에서 번성했으며, 나일강 유역의 고대 이집트와는 지리적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지만 두 문명 모두 죽음과 영생에 대한 염원을 유물과 문양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놀랍게 닮아 있다.
고대 이집트의 토기에 새겨진 배 문양은 죽은 파라오가 태양신 라(Ra)의 배를 타고 사후 세계로 나아가 영생에 도달하는 여정을 상징한다. 이는 동시에 왕의 권위와 부활의 의미를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동양 문화에서도 죽음을 ‘강을 건너는 여정’으로 표현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문명은 죽음을 끝이 아닌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여정으로 이해했다.
[사진=상형문자와 도안으로 새겨진 고대 이집트인의 묘지]
결혼식 기념사진을 닮은 이집트의 묘비
이집트 문명에서 특히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상형문자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상형문자를 통해 죽은 자의 삶과 업적을 기록하고, 사후 세계에서의 영생을 기원했다. 동양에서 묘비에 한자로 족보와 생애를 새기듯, 이집트의 묘지 또한 문자와 도안을 활용해 죽은 자를 기억하려는 강한 염원을 담았다.
묘지의 층마다 다른 정보를 제공하는 구성도 눈길을 끈다. 첫 번째 층에는 묘주와 아내, 자녀들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아래층에는 부모와 형제들, 그다음 층에는 친구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마치 결혼식 기념사진 촬영을 연상시키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가능한 많은 이들의 정보를 새겨 넣으려 한 이들의 모습에서 죽음이 단절이 아닌 연결과 지속의 여정임을 믿었던 철학이 엿보인다.
묘지의 가장 왼쪽에 새겨진 나팔처럼 보이는 물건은 사실 연꽃이다. 고대 이집트에서 연꽃은 밤이 되면 꽃잎이 오므라 들었다가 아침이 되면 다시 활짝 피어나는 성질 때문에 영생과 재생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묘주의 모습과 연꽃 도안은 죽은 자가 재생의 힘을 빌어 다시 깨어나길 기원하는 이집트인들의 염원을 잘 보여준다.
[사진=미라가 담긴 관]
부활을 기다리는 육신의 방
고대 이집트인들은 육신이 온전하게 보존되어야만 영혼이 돌아와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정교하게 미라를 제작하고 사람 형상의 관에 넣어 보관했다.
특히 관의 뚜껑과 전면 장식은 이집트의 영생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태양을 삼키는 신, 아펩(Apep)의 형상이다. 이집트인들은 밤과 어둠이 찾아오는 이유를 아펩이 태양을 삼켰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태양신 라가 밤새 아펩과 싸워 이겨야만 다시 태양이 떠올라 아침이 온다는 것이다.
전시된 관을 세워 두니 마치 대형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익숙한 시각에서 벗어나 관의 크기와 형태를 새롭게 마주하게 되면서, 고대 이집트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에 대한 시각의 전환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사진= 죽은 이에게 길을 인도하는 바스테트 여신상]
[사진=고양이 미라가 담겨진 청동상]
고양이 집사라면 놓칠 수 없는 전시실
고대 이집트인만큼 고양이를 아끼고, 나아가 신격 존재로까지 숭배했던 곳이 또 있었을까? ‘사카라의 비밀(萨卡拉的秘密)’ 전시실에 들어서면 은은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고대 이집트의 신화와 사상이 상부의 애니메이션으로 펼쳐져, 고양이가 죽음을 맞이한 후 바스테트 여신으로 화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고양이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었다. 고양이는 가정을 보호하고 생명을 상징하는 바스테트 여신의 화신으로, 죽은 자를 위험과 혼돈으로부터 보호해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존재였다. 특히 사카라 지역에서는 대규모 고양이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여신에게 바치는 헌정물이자 영적 보호를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전시장에 전시된 고양이 미라와 함께 놓인 X-ray 사진은 고양이 미라가 청동상 내부에 정교하게 담겨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준다.
[사진=하늘로 승천하여 재생을 시작하는 범선상]
부활을 향한 여정
배를 보면 우리는 흔히 항해, 교역, 어업과 같은 생산 활동을 떠올리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배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세 번째 전시실 ‘투탕카멘의 시대(图坦卡蒙的时代)’에 들어서면 마치 어두운 무덤 속으로 들어간 듯한 체험이 펼쳐진다. 벽면에 재현된 무덤 벽화의 애니메이션은 죽은 왕이 배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여정은 결코 평탄치 않다. 죽은 자는 반드시 어둠과 혼돈의 상징인 물결치는 강 아래의 악어와 맞서야만 한다. 범선 아래에 조각된 악어는 죽음과 혼돈의 존재로, 왕의 항해를 가로막는 시련의 상징이다. 이처럼 고대 이집트에서 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 영생으로 나아가는 여정의 상징이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니 나 또한 수많은 악어 같은 시련과 마주하며 흔들리고 때로는 멈춰 섰다. 하지만 이집트 왕이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듯, 나도 다시 범선을 띄우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사진=부활을 시작한 오시리스 동상]
달의 순환에서 찾은 오시리스의 부활
고대 이집트인들이 상상한 신으로서의 부활은 어떤 모습일까? 그 해답은 전시된 오시리스 동상에서 찾을 수 있다. 오시리스는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를 든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죽음에서 깨어나는 순간을 상징한다. 신화에 따르면 오시리스는 14조각으로 나뉘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몸은 흩어져 부활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아내 이시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내 흩어진 시신을 하나하나 찾아 꿰매고 미라로 만들어 마침내 오시리스를 부활시켰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달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했다. 만월에서 초승달로 변화하는 14일의 주기 속에서 죽음과 소멸의 이미지를 발견한 것이다. 어둠 속에서 사라진 달이 다시 떠올라 보름달의 둥근 형상을 가득 채우는 순간을 보며, 이집트인들은 재생과 부활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달의 이 순환은 그들의 우주관을 이루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고,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신화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우주의 질서를 읽어내고 이를 신화로 재창조해낸 그들의 지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경이롭다.
[사진=태양신을 상징하는 스카라브]
박물관을 나서며
전시를 마치고 나오는 길, 고대 이집트인들이 믿었던 영생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매일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태양처럼, 재생과 부활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질서였다. 스카라브(scarab)는 이러한 믿음을 상징한다. 풍뎅이가 흙덩이를 굴리는 모습은 태양신 라가 어둠을 헤치고 해를 밀어 올리는 과정과 닮아 있었고, 왕이 범선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여정과 오시리스의 부활 신화 또한 이와 연결된다. 수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이집트 문명처럼, 겨울의 어둠 끝에 찾아올 새해의 빛을 떠올리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보자.
•주소: 上海市黄浦区人民大道201
•시간: 9:00-17:00, 월요일 휴무
•입장료: 성인 148, 학생 78rmb
•전시기간: 2025년 8월 1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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