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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266]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2025-01-09, 16:28:38] 상하이저널
다이 시지에 | 현대문학 | 2005년 04월
다이 시지에 | 현대문학 | 2005년 04월
원제: Balzac Ou La Petite Taileuse Chinoise

발자크와 중국 소녀와의 상관관계가 무엇일까를 상상하며 고른 책이다. 빨간 구두의 예쁜 표지도 책을 선택하는 데 한 몫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절, 중국의 지식인들은 무조건 시골로 보내져(=하방下放) 재교육을 받아야만 했다고 한다. 이 책의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책 속 화자인 ‘나’와 친구 뤄는 부모들이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찍히는 바람에 고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산골로 보내어진다. 하늘긴꼬리닭 산골 중 가장 궁벽한 마을 오두막집에서 묵으며, 똥지게를 나르고 석탄을 캐기도 하면서도 도시로 돌아갈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버텨낸다. 이웃 마을에는 재봉사의 딸인 바느질 처녀가 살고 있는데 나와 뤄는 둘 다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바느질 처녀는 뤄의 여자친구가 되고, 뤄는 그녀를 개화시켜 자기에게 걸맞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어느 날 이웃마을에서 재교육을 받고 있는 동창 ‘안경잡이’를 만나러 갔다가 그가 숨기고 있는 어떤 물건을 발견한다. 그 안에 있는 것이 분명 책일 거로 생각한 우리는 그의 곤란한 일을 대신해주는 댓가로 책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받아 든 발자크의 <위르쉴 미루에>. 우리는 밤새 그 책을 읽고 문학에 빠져들었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뤄는 책 내용을 이야기해주러 바느질 처녀에게 가고, 나는 좋은 문장들을 두고두고 보기 위해 내 가죽점퍼 안쪽에 필사했다. (중략) 

나중에 안경잡이의 가방을 통째로 훔친 우리는 빅토르 위고, 스탕달, 뒤마, 플로베르, 보들레르, 로맹 롤랑 등의 서양 작가들의 책에 매료되었다. 금기된 것에 눈을 뜬 것이다. 

어느 날 잠시 멀리 떠나게 된 뤄는 나에게 자기 대신 바느질 처녀에게 책 이야기를 해주고 주변 남자들로부터 지켜달라는 부탁을 한다……(하략)”

중국 깡촌의 모습 

이 책은 문화대혁명의 시대에 시골로 보내진 두 주인공이 서양 문학을 접하고 이웃 마을의 예쁜 바느질 처녀를 만나면서 펼쳐지는 스토리가 주요 큰 줄기를 이루고 있지만, 이 가운데 그 시절 중국 깡촌의 모습과 정서, 풍습을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과 함께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책의 초반, 바이올린을 처음 본 마을 사람들에게 악기가 압수될 상황 속에서도 소나타를 연주하며 ’모짜르트는 언제나 마오주석을 생각한다‘는 제목의 음악이라고 설명하며 위기를 모면하는 일화나, 아버지가 치과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뤄에게 이를 치료해달라고 떼쓰는 촌장에게 바늘로 이를 치료해준 이야기, 아침에 되도록 늦게 일어나기 위해 자명종 알람을 조금씩 늦추는 이야기, 물소를 익사시키는 일화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당시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중국 시골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사춘기와 첫사랑 

이 책은 또한 사춘기 시절에 접한 문학에 푹 빠져드는 청년의 모습을 공감가게 그리고 있다. ‘나’는 당시 금지된 서양문학 속 바깥세상에의 호기심과 신비로움에 매력을 느끼고 동경을 갖게 된다. 누구나 청소년기에 접했던 예술-그것이 책이든 영화든 음악이든-에 빠져 크게 영향받고 평생 나의 자산이 되는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성에의 감정! 여자가 드문 마을에서 만나게 된, 그저 마음으로 끙끙 앓던 바느질 처녀와의 비밀스러운 일화를 통해, 아직 여물지 않은 청년 시절에 만나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강렬하게 흡수되어 우리의 정서를 구축하는지를 너무나도 잘 말해준다. 

하방 재교육VS발자크 재교육 

책의 말미쯤 ‘나’와 바느질 처녀는 엄청나게 성장해 있다. 뤄에게는 못 미쳤던 내가 나중에는 점점 뤄 못지 않은 이야기꾼이 되고, 뤄에게 걸맞지 않았던 바느질 처녀는 뤄의 노력으로 점점 교양 있는 여자가 된다. 바느질 처녀가 나중에 어떻게 뒤통수를 치는지 기대하시라. 이 결말로 인해 독자인 나는 이 책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 이쯤 되니, 발자크에게 재교육을 받은 ‘나’와 뤄에게 재교육을 받은 바느질 처녀에 관한 이야기임을 작가가 제목으로써 미리 알려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뤄 또한 자기가 읽은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바느질 처녀를 재교육시킨 것이니 여기에도 발자크의 지분이 크다. 작가인 다이쓰지에戴思杰는 이 책에 실제로 자신이 문화대혁명 때 농촌으로 보내져 재교육받았던 경험을 녹여냈다. 후에 프랑스로 건너가 첫 장편소설인 이 책을 내고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고 한다. 서양 문학을 금지했던 마오의 하방 재교육은 오히려 문학에의 열정을 키웠으니, 결과적으로는 역효과를 낳은 셈이다. 

이 소설은 어떤 장르로 분류될 수 있을까? 나의 재능을 찾아가는 성장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겠고, 혹은 첫사랑의 이야기를 다루는 연애 소설이나, 문학작품에의 헌사 또는 재교육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주는 인문 교양 소설이라고까지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각자 개인에게 다양하게 다가가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더불어,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문학작품을 읽고 싶게 만든다. 그리고 이 책은 그 표지만큼이나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박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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