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칭링 고거 기념관은 전철역에서 멀지 않았다. 일행이 기념관에서 송칭링에 대한 설명문을 꼼꼼히 읽고 있을 때, 나는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 추억에 잠겼다.
송칭링(宋庆龄), 송아이링(宋蔼龄), 송메이링(宋美龄) 세 자매 이야기를 내게 처음 해준 건 S였다. 함께 일하던 방송작가가 교환학생으로 와 있던 중국인 학생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가 S다. 방송이 없는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S에게 중국어를 배웠다. 방송국 내에 있던 카페에서 S는 커피가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송 자매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소설이나 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역사적 인물이라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과 신념을 선택한 자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해도 나는 ‘선택’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방송국을 그만두고 멀리 떠나는 선택을 하게 될 줄 그때는 몰랐었다. 어쩌면 망설이던 나를 송 자매의 이야기가 등 떠밀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종종 선택과 운명 사이에서 우리를 시험한다. 송칭링이 쑨원을 선택한 건 단순히 한 남자를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의 이상을 사랑했고, 그가 바라던 세상을 자신의 꿈으로 받아들였다. 그녀가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할 수 있었던 건 사랑이 그녀의 전부였던 동시에 그녀를 혁명이라는 더 큰 세계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송칭링의 선택에 비하면 그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작은 선택일 뿐이었지만, 그 선택은 내 삶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그때까지 전부인 줄 알았던 삶의 경계들이 하나둘 무너지자, 지경이 넓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한 번도 계획한 적 없던 길들이 열렸고, 그 길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선택은 단순히 결과를 바꾸는 게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누구인지 새롭게 알게 되었다. 송칭링의 선택도 결국 그녀 자신을 새롭게 정의해 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일어나는 뜻밖의 일들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며, 운명이란 주어진 운명에서 도망치려 할 때 바로 그 도망침을 통해 실현된다.”
(은희경 <태연한 인생> 중)
몇 년 사이 전공과 직업을 모두 바꾼 후 서울로 돌아왔을 때, 우연히 S를 다시 만났다. 둘 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몇 년이 흐른 후,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S와 또 마주쳤을 때는 오히려 놀라지 않았다. 운명 같은 인연을 믿게 되었으니까. 한국에서 내게 중국어를 가르쳐주었던 S에게 내가 글쓰기 수업을 해주었고, 우리는 한 권의 책으로 묶일 수 있었다.
어떤 선택은 목숨을 걸고 하기도 하지만, 어떤 선택은 운명처럼 나를 찾아온다. 그 선택들이 모여 삶을 만든다. 지지대의 부축을 받으며 무거운 팔을 들어 올리고 있는 고목을 바라보며, 선택 앞에서 망설이거나 용기를 냈던 내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선택은 여전히 두렵고 어렵지만, 선택의 씨앗 안에는 수많은 가능성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들려오는 나뭇잎의 속삭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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