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귀의 건축 이야기]
상하이 건축의 시간성
몇 해전 런던에서는 세상의 주목을 끈 테이트 갤러리 프로젝트가 완공됐다. 테임즈 강변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소를 공공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해 도시민들에게 되돌려 주자는 프로젝트였다.
당선작은 당시 무명의 스위스 출신 건축가 헤르조그가 차지했다. 그는 발전소의 외벽재료와 공간구성을 그대로 살린 설계로 당선 영예를 안았다. 일약 세계적 스타 건축가로 발돋움하였고, 2008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의 설계자로 지명되기에 이르렀다.
오직 그만이 다 허물어져가는 발전소 벽돌들의 가치를 발견하였는데, 이는 시간이라는 재료를 건축의 조건으로 인식했기에 가능했다. 낡은 벽돌을 다른 재료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전력 생산력 향상을 위해 쓰였던 벽돌을 빛을 반사할 수 있는 미술관의 조각품 재료처럼 남다르게 사용하였던 것이다.
최근 상하이에도 개발붐으로 새로운 건축물이 밤낮으로 건설되고 있다. 과거 생존을 위해 생겨난 집합주택들과, 리농주택들은 그 철거와 변형의 막다른 길목에 서 있다. 근대건축물들의 보존화 정책 등 상하이 시정부도 나름대로의 관치를 펼치곤 있지만 현재 불고 있는 개발의 바람을 견디기에는 일말 역부족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 상하이인들은 서구의 근대 질서관과는 사뭇 다른 공간 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즉, 서양인들이 기존의 원자력발전소도 갤러리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라는 인식을 가지는 데에 약 백년이 걸렸다면, 여기 상하이는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라며 반문하는 듯 보인다.
규정된 서양의 모더니즘은 애초에 여기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들은 기존의 거주 혹은 사무공간들을 다른 공간으로 인식하는 데에 별다른 장애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여기 상하이인들의 무질서한 혹은 탈 질서적인 사고들이 창의적인 이데아로 접근하는 데에 좋은 지름길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신천지 개발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서양인들이 보면 다분히 파격적인 옷 가게, 술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헝산루(衡山路) 거리를 보노라면,‘아~저렇게도 옷 가게의 쇼윈도를 만들 수도 있겠다’라는 놀라움이 든다.
물론 여기 사람들이야 전혀 어색할 리 없겠지만, 태어나서 평생 똑같은 옷 가게의 쇼윈도를 보아온 서양인들의 입장에선 신기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고속철도만이 있는 시대에 태어나 자란 아이에게는 기차가 시속 250km로 달리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보이겠지만, 기차가 느리게 갈수 있고 그래서 기차가 낭만적인 유람선이 될 수도 있다라는 생각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처럼 여러 시간이 공존해있는 상하이의 모습이 현재는 다소 불편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언젠가 개발이 끝나 막다른 길의 벽에 부딪혔을 때, 또 다른 길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창의적 발상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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