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의 차이,
주재국 사정이 고려되지 않는 공허한 주장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 국가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상징이자 중심이자 심장이다. 중국은 사회적 실체가 어떻든 간에 국가(권력) 정체에 있어서는 엄연히 (특수)사회주의체제 국가이다. 이 두 국가 간에 근본적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차이로 인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사회질서에 대해 무지하다면 이번 ‘재중국한국인회’ 선거에 관하여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만약 그 차이를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외면한다면 거기에는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사회 내 한인단체의 경험을 끌어 와 단순비교를 기도한다면 그것은 이미 중국 현실에 바탕 한 ‘이성적 토론’이 아닌 특정후보의 ‘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밖에 없겠다.
거창하게 [특별기고]라는 형식까지 빌어 올린 정광일씨의 “한인회와 국적이 무관한 이유-한인회는 국적이 아닌 혈통중심, 동포개념이 맞다”라는 글이 바로 그러한 우를 범하고 있다. 활동기반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미국에 한인단체 경우를 끌어 다 바로 중국 한인단체에 적용하며 충고를 한다. 그건 중국 사회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으로서 마치 ‘모집단’이 다른 두 곳에서 ‘경우의 수’를 계산해 비교하는 것과 같은 오류로 빗나가 버렸다.
물어보자. 중국에서 ‘민족(혈통)’이나 ‘국적’을 기반으로 다수의 대중들이 임의적 단체를 구성하여 결사하고 집회하고 활동하는 행위가 (법적으로)자유롭게 보장되는가? 잠정적이고 형식적으로 보장될 뿐 언제라도 활동이 제한될 수 있는 그야말로 ‘임의단체’일 뿐이다. 우리가 그러한 사회 환경에 대해 지지하고 지지하지 않고를 떠나 중국과 미국은 그렇게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재미국 재외국민’이 아니라 ‘재중국 재외국민’이다. 중국의 법과 제도와 사회적 규범을 따를 수밖에 없고 따라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중국에서마저 한인단체가 ‘혈통’이나 ‘동포’의 개념이라면, 만약 진짜로 ‘조선족 동포’가 ‘한(국)인회’에 (어떤 목적으로서든)대거 가입을 하고 회장에도 출마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번에 ‘정관’을 임의로 해석한 권력자들은 그들에게 문호를 개방할 용의가 있는가? 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면 내 반론의 글은 당장 철회되어야 한다. 중국에서 단체의 ‘정관’이란 바로 그렇게 중국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조건이나 자격’이 반영 되어 ‘엄격화’ 된 성문규정을 갖추고서 출발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실제 그런 단체가 있다. ‘해외한인무역협회’ 즉 ‘월드옥타(OKTA)’라는 단체다. 그 단체 역시 중국에서는 임의단체에 불과하지만 ‘국가’개념보다는 ‘한민족과 동포’ 개념의 단체이다. 따라서 ‘정관’도 그렇게 되어 있고 조직내부에서 문화정서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큰 문제가 없다. 중국 각 지역에 조선족 동포기업인들이 조직을 이끌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광일씨의 글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교훈을 일깨워 주는 유익한 글이기는 하다.
“해당인사가 그 동안 한인회 활동을 열심히 했을 뿐만 아니라 회장이 유고시 업무 대행할 수 있는 수석부회장직을 수행했다는 점을 중시”.....“중국에서 10여년 넘게 한인회 활동 열심히 하면서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분에게 뒤늦게 미국시민권 운운하면서 시비건 다면 좀 옹색해진다. 지금까지 한인회 활동을 함께 해오지 않았는가?” ......“할 수만 있다면 한민족 혈통을 가진 탈북동포들에게도 한인회원 자격이 주어지는 게 맞다.”
이처럼 생각을 확장해 주고 조직에 관용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 지점에서 유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나머지 현실은 전혀 다르다. 정광일씨의 '혈통'주의나 '동포'개념은 중국에서는 대 착각이다.
첫째, 중국에서 ‘재중한국인회’ 구성이나 피선거 자격이 ‘혈통중심’이고 ‘동포개념’이어야 한다는 고귀한 ‘출발’이 미국에 한인단체와 같은 동일한 ‘결과’를 이끌어 내는가? 뜬구름 잡는 얘기다. ‘조선족’은 한민족으로서 동포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조선족 동포’는 중국에서는 소수민족으로서 ‘중국공민’이다. 중국정부가 ‘중국공민 조선족’들이 같은 동포라는 이유로 ‘재중국한국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을 금지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재중국한국인회는 중국정부 정책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조직정관에 이를 명시하는 것은 주재국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처사이다. 그렇게 충분히 설득력 있는 배경을 반영하여 제정된 ‘정관’이었기에 그나마 지금까지 ‘효력’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둘째, 그 ‘정관’이 오늘날 조직 존립의 규칙과 규정으로서의 ‘존엄성’이나 ‘설득력’을 상실하였다면, 혹은 내용에 시대의 흐름이 반영되지 못해 ‘합리적 강제성’이 상실되었다면 어떤가. 갈등을 유발시킨다. 제정 당시에 보다 사려 깊은 정관을 만들었어야 했거나(즉 중국인 동포를 제외한 기타 재외 동포의 경우는 ‘피선거권’을 가진다 라는 규정 삽입) 지금이라도 정관내용에 ‘한국 국적자’ 피선거권 규정을 개정하는 절차가 우선되어야 한다. 정관은 이유 불문 지키자고 만든 것이다.
오늘 임의적 해석의 용인은 다음 권력자들에 의해 걷잡을 수 없는 또 다른 임의적 폭거의 선례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정체성은 그렇게 무너져 가는 것이다.
셋째, 혹자는 ‘정관’보다 ‘합의’가 우선이라고 말한다. 동의할 만하다. 조직운영의 효율성과 발 빠른 시대흐름에 적응하며 성장을 도모코자 한다면 성문화 된 정관의 강제성 아래보다는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합의’로 결정하는 것이 더 빠르고 생산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데 있다. 역시 유력한 구성원들에 의해 ‘이의’가 제기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재중국한국인회 ‘정관’을 보면 ‘정관’을 ‘개정’하거나 정관에 대한 ‘해석’ 등의 최종 결정권한은 최고의결기관인 ‘대의원총회’에 있다고 봐야 한다. 고문단이나 자문단이나 몇몇 임원들이나 선거관리위원회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합의’를 도출해 내지도 못했고 정식 절차를 밟는 ‘개정’도 없었고 최고의결기관의 ‘의결’도 거치지 않는, 정관에 대한 임의적 해석과 결정과 집행은 이후 법적 효력에서 심각한 흠결을 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정통성의 자기상실이다.
넷째, 물론 재중국한인회를 골목클럽이나 동호회 정도로 인식한다면 이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후보자 누구도 80만 교민이라고 말한다. 80만 교민을 대표하는 단체의 장에 출마하노라! 며 엄숙하게 선언한다. 80만 교민의 권익을 책임지겠노라 목소리 높여 주장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광주광역시장’ 정도가 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 광주광역시장이라는 지위, 즉 광역지자체 단체장선거법을 맘대로 적용해서 선출할 수 있는 자리라고 가정할 수 있는가? 이번에 정관을 임의대로 해석한 임원진이든 선관위든 고문단이든 스스로 자문해 보라. 재중국한국인회장 선거는 동네 동호회 선거이니 광주광역시장 선거와 비교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앞으로 스스로 '교민 80만'을 내세우지 말 일이다.
이제 그야말로 딜레마다. 중국법을 지켜야 하기에 ‘중국공민’인 조선족동포를 배재해야 했던 배경이 ‘한국 국적자여야 한다’는 정관으로 명시되었을 뿐이었단다. 중국공민이 아닌 해외 동포로서 피선거권에 아무 문제가 없고 긴 시간 활동을 해 왔던 훌륭한 사람임에도 단지 한국 국적자여야 한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정관으로 인해 유독 회장선출에서만 배제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타국 한인단체 경우에는 국적 문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저 흔한 일이란다. 전후사정이 그렇다.
특수사정 중국사회 내에 단체의 ‘정관’이라서 융통성이 발휘되지 못한다면 다소 불공정하고 그야말로 ‘옹졸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이해해 줄 만한 ‘타당성’이 충분하다고 해서 곧 ‘합의’나 ‘개정’이나 ‘의결’ 중 어느 것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다 무시해 버린 일방적인 권력행위에 면죄부를 줄 순 없다.
주재국 중국의 성장에 따라 주재하는 한국인의 인적 규모만 커져가고 조직의 천박한 재정만 부풀어 올랐을 뿐인가. 조직의 질적 성장이 뒤따르지 못하여 ‘한국인’들을 도리어 창피하게 만드는 ‘한국인회’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조직 내 사려 깊지 못한 무지한 권력자들에 의해 주사위 역시 무지하게 훌쩍 던져져 버렸나 보다. 하물며 도덕성 시비까지 불거져 있지 않는가 말이다. 추악한 돈질 매관매수 탈법적 행위로 한인회 조직을 곱지 않게 보는 외부 시선들이 따갑지 않는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내일 모래 곧 ‘선거’라는 이 ‘결함의 질주’를 멈춰 낼 브레이크가 아마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스스로 조직의 규모와 지위와 정당성과 정통성의 권위를 내 동댕이 칠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시 중지를 모을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투표하는 대의원들의 ‘정치감각’에 의탁한 후 서둘러 오점을 봉합해 역사에 슬쩍 묻어 버릴 것인가? 선거가 계속 진행된다면 당선자가 누가 되든 ‘재중국한국인회’ 역사는 정통성을 버리고 새로 쓰기 시작하는 것이다. 당선자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풋내나 보이는 정관을 어른스러운 정관으로 바로잡는 일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