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날 친정에 들렀을 때, 아버지로부터 엄마가 요즘 부쩍 삶의 의욕이 없으시다는 얘기를 듣고는 여기 상해에라도 모셔와서 기분전환이라도 시켜드릴까 싶어 여권을 챙겨봤더니 이미 갱신기간이 지나 새로 만들어야 할 상황이었다. 혼자서는 시청에 조차 가기 힘들어 하시길래 점심 먹으러 밖에 나온 김에 바로 시청으로 향했다.
여권에 쓸 사진이 필요해서 우린 시청 옆 근처에서 사진관을 찾았다. 머리손질도 제대로 안하고 나오셨다고 사진 찍기를 자꾸 주저하시는 엄마 손을 억지로 끌다시피 해서 사진관으로 들어섰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10분여 만에 사진이 나왔다.
내가 보기엔 엄마 모습 그대로인 것 같은데, 엄마는 사진을 보고 꽤나 기분이 상한 듯 한참이나 말이 없으셨다. 사진을 빤~히 들여다보시며 “어머, 어쩜, 내 모습이 이러니?” 또 한참을 있으시다 “나이는 못 속인다더니 사진을 보니 정말 내가 이렇게나 늙어버렸네” 하며 긴 한숨을 쉬시는 것이었다.
순간, 뭐라고 위로를 해드려야 할지 나도 당황스러웠다. 옆에 서있던 딸아이도 사진을 보며 ‘우리 외할머니가 이렇게 변해버렸네’ 생각만 할 뿐 쉽사리 말문을 못 열고 있었다. 사진 속의 우리엄마의 모습이 왜 그렇게나 왜소하고 외로워 보이기까지 하든지, 순간 내 마음속에선 이미 서글픔의 덩어리가 뭉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사진 속의 당신의 모습이 영 맘에 걸리는 모양, 속상하신 듯 아버지께 연거푸 하소연을 하셨다. 아버지는 다 커버린 손녀 앞이라 그런지, 처음엔 ‘우리가 다 그렇지 뭐 나이가 들긴 들었잖소’ 하시며 말끝을 흐릴 뿐이셨다.
갑자기 “그 사진관에선 왜 뽀샵도 안 해준거야?” 옆에 있던 딸아이가 속상해서 한마디 거든다. “그렇네! 그 사진관 사진 찍는 솜씨가 영~ 형편없네” 아버진 드디어 위로할 한마디를 찾으신 듯 큰소리로 곁에서 같이 거드셨다. 기운이 하나도 없는 듯한 살아온 세월이 허망하기만한 듯한 두 분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자니 엄마의 속상함이 쉽사리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나도 괜시리 사진사 아저씨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나도 2년여 년 전쯤에 여권을 새로 발급받느라 남편이랑 같이 여권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그 때의, 우리 둘의 심정도 지금의 우리엄마랑 별다를 바 없었다. 각자 자신의 사진을 받아 들고는 부쩍 나이 들어 보이고 이젠 젊음의 티라곤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사진 속의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는 적지 않게 실망을 했었다.
내 사진을 본 남편은, 위로는커녕, “당신은 똑같이 나왔네. 똑 같은데 뭘? 그런데 내 사진은 정말 못 찍은 거 같다” 나도 질세라 “자기도 똑같이 나왔거든. 자기 그렇게 생겼거든” 했었다. 우린 사진 속의 모습에서 변해버린 우리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면서, 감출 수 없는 세월의 무게감 때문에 서로서로 내심 무척이나 속상해하며 마음 아파했었다.
그래도 우린 서로의 사진 속의 모습에 그나마 웃으면서 ‘이건, 좀 못나왔네. 다음엔 좀 잘나오는데 가서 찍으면 되겠지’ 하며,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는 마음의 넉넉함과 세월의 넉넉함을 계산하고 있었다. 원판불변의 법칙을 완전히 잊고선….
사실상, 증명 사진이라는 게 혼자서 찍어야만 하는 거라 표정 관리 하기가 무척 어렵다. 친구들과 가족들과 어울려 찍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보통은 굳은 표정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왠지 모르게 내 모습이 아닌 거 같고 그래서 실망감은 더더욱 커지는 것 같다.
엄마도 나랑 손녀딸이랑 손자랑 같이 웃으면서 찍었으면 훨씬 더 젊게 온화한 모습으로 나왔을 게다. 우리들의 증명사진들은 누구에게나 기쁨보다는 실망을 더 안겨주는 듯하다. “엄마, 여권에 있는 사진 엄마하고 출입국에 있는 사람들만 보는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했다. 이 말도 엄마에겐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듯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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