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에 한 번씩 다녀오는 한국은 글쎄, 해외 나와 산지 10년이란 시간 때문인지 외국을 다녀오는 기분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과거를 찾는 여행 같다.
이번에 우연히 20년 전 즐겨 찾던 칼국수 집을 발견! 얼마나 반갑고 놀랍던지!!! 아침도 점심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서 그런지 배고픔이 두 배로 밀려왔다. 그립고 그립던 추억도 고프게 밀려왔다. 미대를 다니던 시절 학교 앞 작업실에서 출발,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가로수 길을 걷다 보면 그 칼국수집이 나온다.
호주 캔버라시를 모델로 만든 계획도시 창원은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먼저 심어진 게 가로수였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했던 노래처럼 모과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모과가 익을 무렵이면 향기로운 거리를 걷는 자체가 힐링이던 시절. 밥을 사겠다는 친구에게 부담 없이 소개했던 작은 칼국수 집. 문 앞까지 걸어가는 몇 분 동안 나는 풋풋한 20 대로 되돌아갔다.
혹시, 나처럼 여기를 찾은 친구를 갑자기 만나면 어쩌나?(화장이라도 고치고 들어갈까?) 주인이 바뀌었으면 어쩌나?(살짝 핑계대고 나오지 뭐~) 칼국수 맛은 그대로 일까?(쫀득한 면발이 최고였는데) 칼국수 집 간판 하나에 가슴이 콩닥거리다니!(나도 나이를 먹었구나) 엄마가 칼국수 먹을 동안 자기들은 기다릴 테니 다른 걸 사달라는 어린 두 딸을 앞세워 들어간 작은 칼국수 집.
의자며 식탁이며 예전 그대로이다. 메뉴판 없이 벽에 붙은 차림표를 보고 주문하는 것도 그대로고 텅 빈 가게에서 혼자 앉아 계시던 주인아주머니도 예전 모습을 간직하셔서 얼마나 반갑던지!! 인사라도 먼저 건네 볼 걸 머쓱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주문부터 했다.
‘가만, 이 집이 양이 많았으니 두 개를 시키면 남을 테고 우선 하나만 시켜서 맛이나 볼까?’
“칼국수 하나만 주세요”했더니 우리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다지 안반가워 하시던 주인은 억지로 몸을 세워 주방으로 움직이신다.
그러더니 “내 못 만들겠다. 안 만들란다. 팔도 아프고.”
우리보고 그냥 나가란다. 밥집 와서 밥 달라는데 그냥 나가라는 말은 태어나서 첨 들어본 소리였다.
“엄마 나 오늘 칼국수 먹으러 갔다가 이런 일이 있었어. 밥장사하는 사람이 이래도 되는 거야?”
아귀찜 식당을 하시는 친정엄마는 그런 소리 말라고. 저녁시간 전에 쉬는데 애 둘 데리고 들어와 칼국수 하나 시키는 사람이 반가웠겠냐고, 장사하는 사람도 나이가 들면 그럴 수도 있다고 하시지만 엄마는 경기가 어렵다고 아귀찜 가격을 내리고 다섯 사람이 와서 아귀찜 소(小)자를 시키면 소(小)자 가격으로 중(中)자를 만들어주시는 분이다. 돈이 없어 그렇게 시키는 거라며 추가분 밥값은 받지도 않는 분이다.
듣고 보니 내 감정만 생각하는 눈치 없는 아줌마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래도 두 그릇은 시켜야 했다 싶다. 덕분에 칼국수에 대한 나의 추억은 마감이 되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둘걸 괜히 찾아갔다 싶다. 씁쓸하기만 하네.
▷Betty(fish7173. blog.me)
ⓒ 상하이저널(http://www.shanghaibang.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