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바람이 불라치면 우리 집 세 아이들은 한 이불을 서로 덮겠다 아우성이다. 색은 바랠 대로 바랬고 솜은 꺼질 대로 꺼졌건만 인기가 식을 줄 모르는 차렵 이불이다. 딱 18년 전 결혼을 앞두고 친한 친구가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레지던트로 근무하고 있었다. 결혼 후 중국으로 바로 가는 걸 섭섭해 해 보고 오는 중 천안역에서 샀던 이불이다. 1997년, 박스 20개를 베이징으로 부치며 시작한 중국 생활. 이제 이사를 할라치면 8톤 트럭을 불러야 한다.
그 친구가 작년 여름, 아이 둘을 데리고 상하이 우리 집에 1주일 놀러 왔었다. 18년이 지났건만 우리 둘 모두 외모가 변했음에도,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음에도 며칠 만에 만난 듯 했다. 틈만 나면 수다 떨며 공통 분모가 많은 두 엄마를 보며 아이들도 금새 친해졌다. 그 친구는 정확히 말하면 26년 지기 친구다. 남편이 두 아줌마의 우정에 혀를 내두른다. 친구도 주황색 차렵 이불만큼은 알아보고 놀라는 눈치다.
울면서 떠나 보냈던 중국이 이젠 아이들의 체험학습 장소가 된 것을 보며 세월이 흘렀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중국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체감한다. 새로운 차렵 이불을 사 주었건만 이야기가 있는 엄마의 차렵 이불을 아끼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에서 따스함을 발견한다. 어제는 둘째가 그 이불을 차지했다.
이렇게 18년을 여전히 함께 하는 물건들이 내겐 아직 여러 개 있다. 남편은 가끔 이젠 그만 정리할 때 되지 않았나 한다. 18년 지기 물건 중 압력밥솥을 빼 놓을 수 없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하다 보니 손잡이를 두 번이나 갈았고 꼭지도 한 번 바꿨다. 손잡이 한 번은 남편이 무거운 뚜껑을 열다가 떨어뜨려 깨뜨리는 바람에 교환했던 기억이 있다.
뿐이랴 그 연륜만큼 누룽지를 자주 만들다 보니 바닥이 점점 배불뚝이가 되어 한 번씩 쿵쿵 두들겨 주어 편평하게 해주어야 한다. 이 압력밥솥은 위기도 있었다. 딸 시집 보낼 때 준다고 비싼 압력밥솥을 사 주셨던 친정 엄마는 정작 이 압력밥솥을 처분하시고 쿠쿠밥솥으로 일찍 바꾸셨다. 한국 방문 때마다 가는 집마다 쿠쿠밥솥인 걸 보고 아이들은 이 밥솥을 바꾸자고 성화였던 시기가 있었다.
엄마의 꿋꿋함 때문인지 아이들도 오래 된 밥솥을 이젠 대견해 하는 게 보인다. 18년 동안 한결 같은 밥맛이 아이들의 지지를 얻는 비결이지만.
사람이든, 물건이든 18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베이징으로, 쑤저우으로 이사하다 상하이 입성한 것이 2000년이다. 벌써 15년차다. 상하이에 와서야 처음으로 교민지라는 걸 받아볼 수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한글 활자로 정보를 듣는 유익함이 있었다. 중국 신문을 읽기가 쉽지 않은 아줌마인지라 교민지는 상하이 생활을 위한 정보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렇게 상하이저널이 15년을 함께 했다고 한다. 나도 이번에야 알았다. 상하이저널이 창간 15년이 된 줄. 18년이 된 물건들 하나 하나에도 이야기가 있듯, 상하이저널도 나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주었다. 상하이저널이 주관한 글쓰기에 상금 탈 욕심에 도전해 상금을 받아 기뻤던 이야기, 이를 인연으로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쓸 기회를 갖게 되어 예기치 않은 더 큰 행운을 얻게 된 이야기.
생각해 보니 상하이저널이 일개 아줌마인 내게 이렇게 가까운 걸 보면 이 모습이 상하이저널의 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한테만 특별한 교민지라는 생각이 들 때쯤 교민들 가까이서 교민들의 이야기를 담으려 하는 그 노력이 상하이저널의 존재감을 더욱 키워감을 보게 된다.
여러 교민지들이 생겨나고 존재감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문득 15년 동안 초심을 잃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교민지로 거듭나며 곁에 있어 준 상하이저널이 고맙다. 말도 많고 사건도 많은 좁은 교민 사회에서 교민들의 눈높이를 맞추며, 들어 주고 보여주는 일이 만만치는 않을 터.
여럿 놓인 교민지들 중에서 나부터서도 상하이저널을 가장 먼저 집어 챙긴다. 상하이저널의 과거와 현재가 더욱 발전 된 미래를 만들거라 믿는다. 대학 입시를 앞 둔 큰 아이 때문에 교육 관련 정보나 입시 소식을 제일 먼저 들춰 보고, 소개된 공원이나 행사에 국경절 연휴 때 뭐할 까 정보도 얻어 본다. 상하이에 실력 있는 분들이 많다 보니 풍성해진 이야기들 속에서 머리에 기름칠도 해 본다. 늘 활자가 고픈 아줌마에게 15년 동안 좋은 친구가 되어 준 상하이저널 파이팅. 생일 축하해.
Renny(renny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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