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중국 1]
선총원의 ‘변성(边城)’
2012년, 중국은 중국 국적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를 배출한다. 고은 시인이 연속 3회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 기대치가 가장 높을 때, 아시아권에서 중국 작가가 그 해 노벨상을 수상함으로 우리에겐 많은 아쉬움이 남기도 하였다. 영화로도 제작된 ‘붉은 수수밭’의 작가인 모옌(莫言)이다. 하지만 중국 작가들의 노벨상과의 인연은 비단 2012년 한 해의 결과물은 아닌 듯 하다. 프랑스로 망명하여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2000년의 가오싱젠(高行健)을 거슬러 1988년에 이미 중국 작가로 노벨문학상에 오른 이가 선총원(沈从文)이다. 그를 노벨상에서 주목하게 한 작품이 바로 ‘변성’이다. 하지만 1988년 돌연 타계 하므로 노벨상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의 본명은 선웨환(沈岳煥 Chén yuè huàn)이다. 1902. 12. 28 중국 후난성(湖南省) 펑황(凤凰)에서 태어난 그는 소수민족인 묘족 출신이다. 강과 산으로 이어진 빼어난 자연환경 속에서 소박한 소수민족과 함께 자라서 그런지 그의 명작 ‘변성’에서 소박한 중국 변방의 조그만 시골의 빼어난 경치뿐 아니라 가장 이상적인 세상과 같은 법이 필요 없는 한 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1930년대 중국 변방의 마을 이야기
변성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변방지역인 다동(茶峒) 인근 나루터에 사공 노인과 취취라는 손녀가 살아가고 있었다. 다동성에는 선주 순순과 그의 아들인 천보와 나송이라는 두 젊은이가 살았는데 단오 축제를 계기로 선주 집안은 사공 조손을 알게 되고 이후 두 형제는 동시에 취취를 사랑하게 된다. 사공 노인의 제안대로 두 형제는 노래 부르기 시합을 통해 취취에게 구혼을 한다. 시합에서 진 큰아들 천보는 낙담하여 배를 탔다가 사고로 죽게 된다. 천보의 죽음에 아버지 순순과 작은 아들 나송은 사공 노인을 오해하게 되고 작은아들 나송은 부잣집 딸과 결혼하라는 아버지와 다투고는 집을 나간다. 이에 절망한 사공 노인은 마음의 병을 앓다가 폭우가 쏟아지던 날 밤 숨을 거둔다. 사공 노인의 죽음 이후 모든 오해가 풀려 순순 선주는 취취를 며느리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홀로 된 취취는 나루터에서 사공 일을 하며 나송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작품에서 가장 지혜로우며 오래 산 주인공인 취취의 할아버지의 이름은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항상 사공노인이라 칭해지는 것 또한 특이하다. 선총원은 이 작품을 발표하며 자신의 마음을 책머리에 담았다.
“지금의 풍조라면 이런 유형의 작품은 자칫 비평가, 문학이론가,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불쾌감을 자아낼 수 있다. 시대에 뒤떨어질까 우려되어 이 작품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순수함, 자연을 닮은 인간의 아름다움 표현
1934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아름다운 작품을 써 내고도 작가의 마음에 소심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그는 이 책을 사랑할만한 소수의 독자들을 언급하기도 한다.
선총원은 중국 역사의 굴레 속에서 사라져간 중국의 순박하고도 아름다운 농촌과 사람들을 통해 중국이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이야기 하고자 했음을 보게 된다. 작가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먼저 희생되어야 했던 농민들, 엄청난 충격 속에서 본래의 질박하고 근검하며 평화롭던 모습을 상실하고 변해 버린 현대 사회로 가는 것을 슬퍼하며 자신의 모든 아름다운 기억을 글에 담았음을 보게 된다.
‘변성’이라 번역되어 한글의 어감상 오해하기가 쉬운 부분이라 제목에 대한 해석을 덧붙인다. 변성을 굳이 풀자면 ‘변경의 마을’, ‘시골 소읍’이라는 뜻이다.
이 소설에는 악인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어가는 내내 지루하지가 않다. 선총원의 유려한 작가의 필력과 감성으로 그려 낸 다동 마을과 등장 인물들에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텔레비전에서나 현실에서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 세상에서 결혼 허락을 위해 노래 부르기를 제안하고 또 받아 들여 선의의 경쟁을 한다는 자체가 언뜻 들으면 무슨 이상한 소리인가 싶기도 하다. 이 책 안에서 그런 어색함은 없다. 그러한 제안도, 그 제안을 실행하는 두 형제도 모두 우리가 꿈꾸던 고향의 아름다운 모습이기에 그저 정겹고 웃음이 난다. 자본 경제와 외모 지상주의, 경쟁 구도와 도시화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1934년에 쓰여진 이 책은 국적, 연령, 성별을 초월하여 가슴 깊이 숨겨 둔 순수함, 자연을 닮은 인간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취취, 천보, 나송 같은 친구를 만나길
책 서두 부분에 강을 끼고 있는 다동 마을이 물난리로 강가의 여러 채 집이 떠내려 간다.
‘속수 무책의 불행을 목도할 때처럼 물난리가 나면 사람들은 성 위에서 갑자기 넓어진 수면을 바라 보았다. 그런 경우 물살이 느려지는 세관 거룻배 앞에 누군가 작은 배를 타고 나와 물 위에 떠 있는 가축이나 나무 막대, 빈 배를 보다가 배에서 여인이나 애들의 우는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면 서둘러 노를 저어 다가가 목표물을 긴 끈으로 동여맨 뒤 강가로 끌고 나왔다. 착하고 용감한 사람들. 이득도 정의도 지킬 줄 아는 이 고장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서슴없이 사람 목숨과 재물을 구할 줄 아는 그들은 모험을 즐기기도 하는 날렵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노라면 누구라도 박수가 절로 나왔다.’
(변성 내용 中)
변성 속의 주인공들은 사람을 구한 영웅들도 다동의 자연을 닮아서 너무나도 겸손하고 소박하다. 매연과 경쟁이 가득한 도시 속에서 다동 마을의 사공 노인, 누군가의 이성상일 수도 있을 취취, 그리고 천보와 나송 같은 친구를 만날 꿈을 꿔 본다. 1934년의 선총원에게서 순수함, 소박함, 자연이 주는 모든 아름다움을 선물로 가득 받았다.
▷고등부 학생기자 한동영(상해한국학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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