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 공감 한 줄]
생명에 대한 뜨거운 사랑
모옌(莫言)의 ‘개구리’
|
모옌 | 민음사 | 2012 | 원제 蛙(2009) |
모옌(莫言)의 ‘개구리’는 모옌이 10여년 동안 정성들여 준비한 야심작이다. 이 글은 역사의 한 단면과 고모라는 인물의 일생을 통해 중국 산아제한정책 전후의 역사흐름과 민중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고모는 전기적인 색채를 띤 인물이다. 전쟁 당시 군의관이었던 아버지를 둔 그녀는 명문가의 자녀였다. 일본 장교에게 끌려갔으나 기개있게 돌아온 완신은 의학 공부를 한 뒤 시골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되어 50년동안 1만 명이 넘는 아이를 받아냈다. 사람들에게 산 부처처럼 떠받들리던 그녀의 앞길은 무지개처럼 아름다울 것 같았으나 약혼자였던 공군 조종사가 타이완으로 망명하면서 그녀의 앞길에는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고모는 능력을 인정받아 산부인과로 다시 나오게 되지만 그녀가 해야 할 일은 정부의 강압적인 산아제한 정책의 시행자로 정관수술과 임신중절수술을 하도록 강요받게 된다.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가득찬 그녀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예외라는 건 없다. 조카의 첫번째 아내였던 왕런메이가 둘째를 임신하고 친정으로 도망가자 고모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트럭을 몰고가서 굳게 닫힌 왕런메이의 집 대문을 치고 들어가는 극단적인 방법과 사상공작을 하여 끝내는 왕런메이가 임신중절수술을 받게 하였다. (안타깝게도 왕런메이는 수술 중 심한 출혈로 사망한다.)
또 조카의 어린 시절 친구였던 천비의 아내가 둘째를 임신해서 이리저리 피해다니다 애를 낳으려고 배를 타고 필사적으로 도망을 가자 고모는 앓다가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배를 타고 쫓아간다. 고모가 탄 배가 천비의 아내가 탄 배에 닿았을 때 천비의 아내 왕단은 애를 낳는다. 인공유산을 시키려고 쫓아왔던 고모는 즉시 산파가 되어 산모를 도와서 애를 받아낸다. 이미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이상 그것은 온 힘을 다해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산모는 세상을 떠난다. 아이러니와 희비, 울부짖음이 교차한다.
“나는 원래 아기가 태어날 때 들리는 첫 번째 울음소리를 가장 좋아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갓 태어난 아기의 울음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음악이거든요. 하지만 그날 밤 들었던 개구리 울음소리엔 원한과 굴욕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어요. 마치 상처 입은 수많은 아기의 정령이 호소하는 것 같았다니까요?”
그토록 많은 생명을 받아냈고 또 그토록 많은 생명을 앗아가면서 결국 자신은 애를 낳지 않았던 고모는 자신이 앗아간 생명들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남은 일생을 보낸다. 끊임없는 선택과 강요의 중심에 있었던 고모는 그 시대의 산물이고 그 시대의 대표인물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머리에도 희미하게나마 어릴 적 마을에서 엄마들이 받았던 단체 중절수술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들은 단체로 마을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았고 나는 삶은 강냉이를 들고 할머니와 같이 병문안을 갔다. 어머니의 얼굴모습은 떠오르지 않고 그 후에 오랫동안 어머니가 그 수술의 후유증으로 허리가 아프다고 했던 것만 기억난다. 모옌의 작품 속의 끔찍하리만치 생생한 묘사를 읽으면서 나는 어머니의 창백한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 시대는 지나갔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제목 ‘개구리’는 상징법이다. 글에는 개구리의 중국어 발음 ‘와’와 애기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울음소리 ‘와~’가 같은 발음이라고 말한다. 그 뿐 아니라 중국전설에서 인류의 시조로 등장하는 ‘여와’도 ‘와’, 개구리와 같은 발음이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았던 내게 개구리는 익숙한 곤충이고 개구리 울음소리도 귀에 익은 가락이다. 개구리의 울음소리와 어린애의 울음소리, 올챙이가 개구리로 변하는 모습과 태아가 임신부의 자궁안에서 커가는 모습을, 개구리의 울음소리로 고모의 말없이 울고 있는 속마음을 표현한 작가의 상상력에 입이 벌어진다.
이 소설은 궁극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위로이다. 55살에 대리모를 통해 아들을 얻은 주인공 커더우는 말한다.
“관문을 통과만 하면 또 하나의 새 생명이죠. 우리가 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사랑 외에 다른 건 없습니다.”
문학적 가치성과 스토리의 흥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모옌의 장편소설 ‘개구리’는 꼭 한 번 읽어보라고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