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중국 2]
루쉰의 ‘광인일기(狂人日记)’
우리나라 서민 문학이 훈민정음의 창제와 한글의 보급을 계기로 발달한 것처럼, 중국의 문학 작품도 번체자(繁体字)에서 간체자(简体字)로, 복잡한 문어체에서 ‘백화문(白话文, 구어체)’으로 바뀌며 서민 속으로 들어왔다. 100년 가까이 그 역사를 이어 온 중국 현대 문학의 시작은 어땠을까? 중국 최초의 백화문 소설, 루쉰(鲁迅)의 ‘광인일기(狂人日记)’를 통해 살펴보자.
‘광인일기’는 작품의 서술자가 우연찮게 발견한, 한 미치광이가 쓴 13편의 짧은 일기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이 ‘광인’은 피해망상증에 걸렸다가 회복한 작가의 지인이라고 작품 첫머리에 소개돼 있다.
달 밝은 밤, 울부짖는 개. 어두움에 휩싸인 분위기에서 주인공인 ‘광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吃人’, ‘식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대화에서, 도덕을 가르치는 책의 행간에서, 심지어는 자신의 친형을 보면서까지도 그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자신도 전에 사람 고기를 먹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더 괴로워한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광인’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작품 속에서, 사람을 먹는 것은 비정상적인 행위이지만 미치광이인 주인공 혼자만이 그것을 인식하고 두려워한다. 그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부조리한 것일까? 이런 독자들의 고민을 작가 루쉰은, 사람들이 그때까지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켜왔던 중국의 봉건적 악덕과 폐습이 과연 옳은 것이냐는 질문으로 이끌었다. 이렇게 작가는 20세기 초, 중화민족의 의식 개혁의 필요성을 ‘광인’의 목소리로 누차 강조했고, 현실을 바르게 볼 줄 아는 사람이 오히려 미치광이로 보이는 당시 사회를 비판했다.
“救救孩子….”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 “아이들을 구하자!”라고 외치는 ‘광인’의 절규이다. 아이들이 잡아 먹힐까 두려워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인육을 먹어보지 않은 아이들만큼은 식인종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여서가 아닐까. 미래에 대한 작가의 간절한 바람이 비유적으로 잘 드러난 부분이다.
이 작품을 쓴 중국의 유명한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은 중국 근대에 일어난 ‘신문화운동(新文化运动)’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1918년에 발표된 <광인일기>에 이어 <공을기(孔乙己)>, <야초(野草)>, <아큐정전(阿Q正传)> 등 작품을 통해 중국의 근대 문학의 확립에 이바지했고, 사회 현실을 비판하며 허위보다는 현실을 중요시하는 사상에서의 혁명을 이끌었다. 마오쩌둥이 “루쉰의 방향이 곧 중화민족 신문화의 방향이다”라고 말한 만큼, 루쉰의 작품과 사상은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광인일기’는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변화의 시작을 뜻한다.
‘광인일기’의 중국어 원문을 읽어보면 현대 중국어와 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느낌 그리고 ‘광인’의 의식을 흘러가는 대로 그려낸 독특한 언어가 독자를 사로잡을 것이다. 또 꼭 중국어가 아니더라도 한글, 영문(A Madman’s Diary) 번역본으로 이 작품을 만나볼 수 있으니, 선택해 감상하고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대적 배경 속 작가의 외침 그리고 그 영향에 힘을 실어 준 백화문의 가치를 생각해보며 이 작품을 읽어본다면, 더욱 뜻 깊은 독서 경험이 되지 않을까.
▷고등부 학생기자 최하영(상해한국학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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