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만난사람]
‘정체성에 대한 고찰을 그려내다’
미술 갤러리 윤아르떼의 첫번째 전시회 주인공인 윤상윤 작가(37)가 상하이를 찾았다. ‘한국의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세계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자처한 윤아르떼가 제일 먼저 중국에 알리고픈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이번 전시에서는 윤상윤 작가가 2010~12년에 걸쳐 그려온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20점의 작품은 전체적인 구조와 내용은 그 궤를 함께 하되 표현에만 차이를 뒀다. 그는 이를 두고 ‘기본적인 스트럭처가 있는 상태에서 변주되는 007 시리즈’에 비유했다.
작가의 눈에 비친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무의식 위에 의식(자아)이 있고, 그 위에 초자아가 존재하는 구조”라고 말한다. 전시된 모든 작품에는 ‘물’이 등장한다. 그는 무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투명하면서도 반사되는 물의 속성을 이용하게 됐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작품 속에 (주로 중앙에 높게)따로 존재하는 사물이나 사람인데 이것이 ‘초자아’다. 작가는 고독하고도 자유로운 초자아의 모습을 밝은 색채로 표현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동서양 세계관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작가는 개인의 진정한 정체성이란 Identity(사회가 부여한 신분)와 Individuality(개인의 고유한 특성)가 합쳐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동양에서는 Individuality가 많이 무시되고 Identity가 곧 정체성으로 통한다. 그러다 보니 같은 ‘나’도 속한 그룹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갖게 되는데 여기서 개인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게 된다. 결국 점점 사회가 만들어둔 획일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반면 서양에서는 주변을 둘러싼 상황이나 환경보다는 개인의 심리상태나 특징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이는 그림에서도 나타나는데 고맥락에 해당하는 동양 문화는 한 획으로 표현된다면, 저맥락의 서양 문화는 무수히 많은 드로잉과 수정을 거쳐 완성된다. 작가의 작품은 유화임에도 동양의 기법이 함께 쓰였다. 고맥락 문화는 한자가 그렇듯 대부분의 정보가 내면화돼 있는 반면, 알파벳으로 대표되는 저맥락 문화는 대부분의 정보가 명시적인 부호 형태로 전달된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이 보는 세계를 자신의 방법으로 그려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작품 그대로를 던졌을 때 관람객에 의해 의미가 확장되고 파생되길 바랄 뿐 메시지를 더하진 않는다.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의 ‘님’은 그 의미가 모두에게 다르지 않나. 어디까지나 받아들이는 이의 몫이다.”
윤상윤 작가는 서예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주 어릴 때부터 먹을 갈고 신문지에 붓질을 했다. 아버지는 서예 종주국인 중국 하이난사범대학의 강단에 서 유명세를 탄 윤평수 선생이다. 그 후 윤 작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학부과정을 마치고 영국으로 건너가 석사 과정을 보낸 그에게 차이를 묻자 “한국에서나 영국에서나 배우는 내용이나 학생들의 실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풀 타임(full time)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 꿈인 것도 비슷하다. 다만 런던에서 졸업할 때에는 많은 갤러리와 콜렉터들이 자리해 학생들의 작품을 사기도 하고 스카우트를 하기도 하는데 졸업생들이 굉장히 주목 받는 분위기라 아주 열심히 한다. 한국에는 그런 게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화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는 “구도의 길을 찾는 과정인 것 같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생존을 건 고집’이라고 표현할 만큼 화가의 삶을 견지하기란 쉽지 않다. 투자한 만큼 회수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는 것에는 ‘인생이 너무 짧구나’라고 느끼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그래서 인생을 걸고 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미술전시가 낯선 이들을 위해 한 마디를 보탰다.
“그림을 감상할 때면 감동도 없는데 감동한 척 하기도 하고, ‘내가 취향이 낮은 건가’싶어 소극적으로 되기도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내용과 의미를 파악하려고 고민하거나 숙제 하듯이 관람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느껴지는 바가 없어도 그 뿐이고, 도저히 모르겠다 해도 알아보려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된다.”
미술학자 곰 브리치의 말이라고 머쓱하게 말하는 작가의 친절함에 용기를 내 다시 한 번 작품을 둘러본다. 한결 자유로워진 그림 위로 나만의 이야기가 피어 오른다.
▷김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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