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남편을 따라 두 아이를 데리고 상하이에 왔다. 시간이야 어디에서든 두 아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광속으로 빠르게 지나갔지만, 상하이에서의 시간은 몇 배속 더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 같다. 상하이에 오기 전까지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두 아이를 낳았지만 일일이 내 손으로 키우지 못했다. 친정 엄마, 도우미 아주머니, 동네 아주머니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마치 뻐꾸기처럼 들락날락하다보니 아이들은 어느새 커 있었다. 아이들도 순했고 헌신적인 친정 엄마 덕분에 애들 키우는 고생은 몰랐다.
그저 두 가지 일을 너무나도 잘해낸다며 스스로 대견해했다. 그랬던 것이 상하이에서 오롯이 우리 가족만 생활하게 되면서 하나씩 부딪혀 깨져버렸다. 사소하게는 매끼 내가 해야만 하는 밥도 문제였다. 우리 가족은 친정 바로 밑에 층에 살았기 때문에 차려져 나오는 밥에 대한 황송함을 몰랐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찬밥 한 공기도 그냥 나오지 않았다. 너무 당연한 것을 몰랐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밥도 밥이지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이들과의 관계였다. 아이들이 순해서 그냥 알아서 자라는 줄 알았지, 얼마나 많은 손이 필요한지 너무 몰랐다. 특히 큰 애는 아들인데, 나와 성향이 너무 달라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한 엄마는 약한 아이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너무 많이 주었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영화 ‘사도’를 통해서였다. 사도세자와 영조의 이 기막힌 이야기를 저는 지금까지 영조의 분노로부터 시작된 우발적인 사고라고 알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 속에서 사도세자의 행동이 얼마나 용서받을 수 없었던 것인지의 문제는 차치하고,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아들의 모습에서 한없이 안쓰러움을 느꼈다. 의관을 갖추고 아버지 영조 앞에 선 사도세자는 대님을 바로 메지 않았다는 이유로 핀잔을 듣는다. 영조의 대리청정을 받으며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으려고 하자 아버지 영조는 뭐하는 짓이냐며 내가 해 놓은 것을 다 망쳐버리고 있다고 호통을 친다. 사랑은 고사하고 조금이라도 인정을 받고자 노력했던 사도세자는 잘하려고 하면 할수록 일이 비뚤어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영조는 후에 정조가 되는 손자에게 ‘너는 아버지보다 나은 아들이다’라면서 비교까지 한다. 형제 관계에서 비교도 마음이 쓰라린데 하물며 자식과 비교당하는 사도세자의 상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컷을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가슴 한 켠이 저릿하고 아팠다. 눈치 빠르고 애교 많은 둘째 아이에 비해 늦되고 얼뜨기같은 큰 아이를 보면서 속이 답답해서 한다는 말이 어째 '사도' 속의 영조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는 어째 운동화 끈 하나를 못 매니?”
“이 답답아, 너 몇 살인데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해? 네 동생을 보고 배워야 할 판이야.”
조부모님의 사랑을 한껏 받던 아이는 그토록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길 원했던 엄마와의 시간이 많아지자 눈치때기가 되었고, 자신감을 잃어갔다. 그러다보니 더 야단을 치게 되고 아이는 더더욱 엄마 앞에서는 작아지고 악순환이 시작되었다. 가정과 아이에게 충실하자고 각오를 다지며 여기에 왔는데 오히려 더 힘들어지게 된 것이다.
영화를 보며 내내 울었다. ‘대님 따위가 뭐라고, 운동화 끈 따위가 뭐라고....’ 사소한 실수를 가지고 기를 죽이고 상처를 줬을까. 세상에서 제일 자신을 믿어주고 사랑해줘야 할 부모로부터 받은 서러움이 분노로 바뀌어 돌이킬 수 없는 슬픈 역사를 만든 저 부자가 한없이 한심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 모습이 마치 나를 비춘 거울처럼 보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한다. 깨물어도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썩어 잘려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아픈 내 손가락, 이제부터라도 더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해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자 의무라는 것을 알았다. 만약 이 시간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계속 아이를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을 것이다. 가족의 일에 가장 집중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이와 부딪히고 넘어지고 마음 아파하는 엄마로서 성장할 수 있는 상하이 생활이 감사하다.
느릅나무(sunman5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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