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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도시락

[2017-07-25, 13:11:49] 상하이저널
2km를 걸어 초등학교에 다녔었다. 산골짜기는 아니고 신작로라 불리는 큰 길을 따라 걷고, 한 동네에 사는 친구들, 언니, 동생이랑 함께 가기 때문에 심심할 사이가 없었다. 오고 가는 동안 봄이면 길 양 옆의 아카시아향을 맡으며 걸었고, 여름엔 길 양쪽 나지막한 산언저리의 찔레와 산딸기를 따 먹으며 걸었다, 비라도 내린 후면 길 중간에 사는 은숙이네 살구나무 아래 떨어진 잘 익은 살구를 주워 먹으며 걸었다. 마을 어른이 면소재지에 나왔다가 경운기를 타고 지나갈 때는 누가 뭐라 할 것 없이 냅다 뛰어 경운기에 올라타는 날이면 집까지 걸어가지 않아도 되어 운수대통이라 여겼다. 오며 가며 무료함을 달랠 요량으로 책이름 말하기, 동요이름 대기 등 언니랑 내기하고 오면 학교에 도착해 있곤 했다. 

겨울방학 직전엔 점심 한 시간 전쯤 선생님은 아이들 도시락을 꺼내라신다. 요즘은 보기 힘든 양은으로 된 타원형, 네모의 도시락을 꺼내면 선생님은 장작으로 태우는 난로 위에 5-6겹으로 쌓아 놓으신다. 한 겨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도시락을 받아 누룽지까지 먹던 기억이 아련하다. 시골 초등학교의 소풍에 선생님 도시락은 큰 고미거리다. 늘 반장인 언니와 나 때문에 엄마는 시골에서 선생님의 소풍 도시락을 만드셨다. 시골 먹거리에 익숙해 김밥이 귀하던 시절에 2-3 종류의 멋스런 김밥을 만들어 내던 엄마를 보며 마술사 같다 여겼다.

유치원 소풍 때마다 지금은 흔해져 버린 김밥을 싸면서 엄마로부터 전수받은 조금은 다른 김밥을 싸고 있는 날 본다. 계란 지단을 부쳐 다시 한 번 말아 계란말이 김밥을 만들고 계란을 삶아 나의 엄마가 했듯이 모양을 내 보고, 사과를 가지고 토끼도 만들어 본다.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던 여고시절 항상 두 개의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다. 아무리 조심해도 만원인 등굣길의 버스 안에서 흔들려 김치 국물이 가방에 흘러 있을 때의 낭패가 떠오른다. 큰아이가 상해한국학교에 입학할 때 한 학기 중국학교에서 더부살이를 했었다. 그 때 매일 도시락을 싸 보내며 초등 1학년이 보온밥통을 못 열까봐 집에서 미리 연습을 시켜봤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 아이가 벌써 대학생이다.

아이들이 중국로컬학교로 전학을 하며 도시락을 싸게 되었다. 매일 교실로 배달되는 학교 급식도시락을 먹일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점심때마다 학교 정문에 손자, 손녀들을 위해 도시락을 전해 주기 위해 늘어 선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며 도시락을 싸기로 했다. 그렇게 큰 아이가 3년, 둘째가 3년, 그 사이 중국의 급식 환경이 좋아져 도시락을 싸던 막내는 이젠 학교 급식을 더 좋아해 작년부터 도시락을 싸지 않는다.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항상 귀하던 계란후라이는 항상 밥 위에 얹어 준다. 다행히도 중국, 외국 친구들이 김치를 좋아해 주어 항상 김치를 기본으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두어 가지 반찬을 해내려니 감기라도 걸렸을 땐 난감하다. 별식으로 주먹밥, 삼각 김밥을 보내기도 했다. 매일 도시락을 싸 가는 아이들을 가장 부러워한 건 남편이다. 언제부터인가 농담처럼 말하더니 이젠 남편이 도시락 대열에 합류했다. 아이들과 달리 얼마나 좋아하고 감사해 하는지, 내가 다 미안해지려 한다. 

찬통을 정리하다 수북한 도시락통을 발견하고 정리를 했다. 남편을 위해 스텐레스로 된 도시락통만 남기고 정리하며 지금은 기억도 어렴풋한 도시락 싸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익은 김치를 씻어 기름에 달달 볶아 조려 김치볶음을 만들고, 오징어채에 고추장, 참기름, 대파, 물엿을 넣어 버무려 진미채무침을 만들고 2개월 전 담가 둔 마늘쫑장아찌를 옮겨 담고 다음 주 남편의 기본 도시락 밑반찬을 준비해 본다. 이것도 지나간 한 때의 소중한 인생의 한페이지임을 나에게 주지시키며….

Renny(renny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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