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큰아이와 같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던 타이완 엄마한테 연락이 왔다. 아이가 곧 멀리 전학을 간다며 가기 전에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자는 연락이었다. 우린 멀리 푸동까지 가서 함께 점심을 먹고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놀러 갔다. 그 엄마는 여전히 환경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뜻이 맞는 엄마들이 모여 거리나 바닷가로 쓰레기를 주으러 다니고, 장애우와 함께 친환경비누를 만들어 판매하고, 환경이 열악한 학교나 단체를 찾아 다니며 공연도 한다. 고작 몇 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어엿한 환경단체가 됐다고 한다.
내가 이 엄마한테 반한 건 처음 식사를 같이 하게 됐을 때였다. 남은 음식이 아깝다며 가방에서 밀폐용기를 꺼내 싸가는 모습을 보고, 정말 우리 할머니 이후로 밀폐용기까지 가지고 다니는 사람을 처음 본 것이었다. 이 날도 어김없이 밀폐용기를 꺼내 얼마 남지도 않은 음식을 싸갔다. 나도 이 엄마의 영향으로 한동안 밀폐용기를 가지고 다녔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맣게 잊어버리고는 아무 생각 없이 일회용기에 남은 음식들을 포장해가곤 했다.
성격까지 유쾌한 이 엄마는 항상 모든 사람에게 “谢谢”를 연발해, 오죽하면 식당 종업원이 자기한테 제발 ‘谢谢’ 좀 그만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자기도 평생 해 온 말이라 쉽게 되지 않는단다. 난 항상 들릴 듯 말 듯 한 말로 “谢谢”를 하곤 했었는데, 이 엄마를 만나고 난 후론 나도 씩씩하게 ‘谢谢’를 말할 수 있게 됐다. 택배를 받을 때도, 셔틀버스에서 내릴 때도, 음식을 서빙받을 때도 ‘谢谢’를 생활화했다.
며칠 전 밀크티를 배송시켰는데, 밀크티 한잔이 완전히 쏟아져 반도 남지 않았고, 비닐봉지 안이 쏟아진 밀크티로 범벅이 돼서 배달이 왔었다. 문을 열자 마자 난감한 표정을 한 배달원이 오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음료가 다 쏟아졌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오랜만에 만나고 온 이 타이완엄마의 해피바이러스를 이용해 웃으며 얘기했다. “没关系, 不要紧!(méi guān xi, bù yào jǐn!)”
이 말을 들은 배달원의 표정은 안도와 함께 더욱 더 미안하다며 연신 사과를 하며 돌아갔다. 들고 오는 내내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그 후론 웬만한 일엔 그냥 ‘没关系, 不要紧!’이라고 쿨하게 넘어가는 일이 많아졌다. 괜찮다고 한마디 한 것뿐인데 내 기분은 깃털처럼 가벼워 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직은 내공이 부족한 탓에 쿨한 척을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괜찮아요!’의 위력은 가히 추천할 만 하다. 무더운 여름날 자꾸 자꾸 써먹어 보아라. 마음만은 시원해질 것이다.
반장엄마(erinj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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