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셋 중 가장 먼저 결혼한 친구 남편은 9남매 중 막내 아들이었다. 그리고 다음은 내가 달랑 두 형제인 맏이 하고 결혼을 했고 마지막으로 또 한 친구가 8남매 맏아들과 결혼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막내는 대부분 귀여움을 받고 자라겠지만 형제 많은 집 막내는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부모님 연로 하시고 형님 누님 나이 차이가 많으니 또래집단의 관계도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생활력은 강해 사회생활은 문제없이 잘 해나가지만 타고난 막내의 기질은 어쩔 수 없는지 집에서는 친구에게 어리광(?) 같은걸 부리고 정 많은 맏딸인 친구는 그것을 잘도 받아준다.
상대적으로 맏이인 아들은 스스로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니 친구도 자연스럽게 그 짐이 지워졌다. 사실상 대가족의 리더이다 보니 권위적이었고 늘 삶이 분주했고 감정을 드러내는데 아주 소극적이었다. 친구는 늘 알아서 집안의 대소사를 이끌어 나가는 진정한(?) 맏며느리가 되어갔다.
나는 그 시절 핵가족 맏아들과, 특히 맏아들에게 각별한 사랑이 가득한 시댁이었지만 나도 외딸에 맏이, 그런 배경으로 서로 강함이 많이 부딪혔던 것 같다. 결혼 초 에는 모든 면에 환경이 다르니 많이들 그렇듯 우리도 시댁식구들과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특히 맏며느리인 우리 둘과 막내인 친구와의 의견은 종종 부딪히곤 했다.
어쩌다 모이면 이런 갈등을 쏟아놓게 되는데, 이미 80이 넘으신 시어머니, 친정 어머니 보다 더 연로하신 형님들이 계시니 늘 막내라 배려해주시고 챙겨 주시니 친구는 우리가 이상한듯한 눈으로 교과서적인 교훈을 하곤 해서 우리를 폭발하게 했다. 어머니와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드리면 좋아하신다느니 자기 어머니는 항상 쌈짓돈을 꼭 쥐어주고 가신다느니 하는 말에 어느 날 "너 그 돈 어디서 나는 줄 알어? 맏며느리가 드린 용돈 너한테 가는 거야. 너 형님 한테 가서 여쭤봐. 너랑 같은 생각인지"하며 속마음은 부러움으로 가득했지만 발끈했던 웃지 못할 기억도 있다. 엊그제 같던 이런 삶들이 어느새 지나간 건지 모르겠다. 꿈만 같다.
카톡, 카톡 소식이 연달아 올랐다.
"우리 아주버님 입원하셨어. 어머, 우리 셋째 형님 쓰러지셨대" 그러더니 이틀 후, "돌아가셨어."
장례에 다녀와선 의식이 없으신 형님, 치매가 오신 형님, 게다가 60이 넘은 자기 남편이 거기선 청년이고 자기는 처자로 불려진다니. 막내라 가족의 온갖 사랑과 관심을 받고 살아왔는데 이제 어른들이 연세 들어 이렇게 한 분 두분 떠나시거나 준비를 하시니 모든 것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고 각자의 자리가 있는 듯 하다. 그러면서 이제 청년과 처자(?) 친구 내외의 수고가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 동안 받은 사랑을 기억한다면 세상은 또 그렇게 아름답게 가고 있겠지라는 희망을 이야기 했다.
상하이의 가을이 왔다. 덥고 습한 여름을 아는 사람이면 이 짧은 계절이 얼마나 좋은지 안다. 문득, 풍요로움과 더불어 스치는 차가운 기운에서 몰려오는 그리움, 아련함 이런 시린 가슴은 세월이 가져다 준 흔적인가? 그렇지만 이것도 나의 인생길의 한 부분이라면 지금 이순간도 끌어안고 사랑하리.
칭푸아줌마(pbd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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