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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통 큰 대륙 친구

[2020-05-13, 15:30:10] 상하이저널

이른 아침부터 위챗 알림 소리가 요란해서 들어가 보니 중국 친구들의 단톡방에 이미 100개가 넘는 톡이 올라오고 있었다. 또 무슨 일이 났나 싶어 얼른 들어가 보니,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이 마당에 메뚜기 떼가 몰려온다며 중국 친구 하나가 갖가지 기사를 보여주며 쌀을 많이 사 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도 안했던 사재기를 지금 해야 한다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금 지나니 다른 친구들도 하나 둘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쌀 좀 넉넉히 사 놓으라고 하려던 참이었다며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두 세 명이 이렇게 선동을 하니 나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집에만 있어 쌀이 팍팍 주는데 이런 얘기까지 들으니 슬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제일 처음 말을 꺼낸 친구는 이미 준비를 끝냈다며 우리도 빨리 준비를 하라는데, 뭘 어떻게 준비를 했냐고 물으니 백미와 잡곡 그리고 밀가루 등을 다 하면 족히 200kg 정도는 될 거라고 한다. 그리고 시댁에서 보낸 농산물이 지금 오고 있는 중이란다. 초등학교 저학년생과 중학생 자녀를 포함해 4식구인 이 친구의 스케일은 도저히 범접 불가였다. 200kg라는 대답에 다른 친구들도 놀란 반응을 보였다. 더욱이 한 친구는 상하이에서 설마 쌀을 못 사겠냐며, 60년대 대기근이 다시 찾아온다 해도 상하이엔 쌀이 끊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본인은 전혀 준비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또 그렇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얼마나 준비를 해놨냐고 물으니 기껏 쌀 한 포대 더 사놓는 정도라고 했다. 그 정도야 항상 준비해 두는 양이니 난 따로 준비할 것도 없었다. 200kg 식량을 준비했다는 이 친구는 코로나가 막 창궐했을 당시 남편 회사를 통해 한국에서 마스크 만 장을 주문했었던 통 큰 이력이 있는 친구이다.  회사에서 쓰려고 많이 주문 한 줄 알았는데, 오롯이 자기 식구들끼리 쓸 양이란다. 이 친구 말에 휩쓸렸다간 우리 집은 며칠도 안 가서 거덜 날 것이다.  

다행히 주변엔 이성적인 친구들도 있어 나는 햇반 몇 개 사놓는 걸로 나름대로의 준비를 끝냈다. 햇반 구매 사진을 보여주며 나도 나름대로 만발의 준비를 갖췄다고 했더니, 이 통 큰 친구가 햇반이 맛있는지 물어보길래, 맛도 있고 편리하고 무엇보다 유통기간도 넉넉하다 했더니 정확히 5분 후 몇 박스를 구매한 사진이 올라왔다.  

우린 이 친구의 구매력과 실행력에 혀를 내 둘렀고, 유통기간이 다 할 때까지 못 먹으면 꼭 우리한테 나눠달라고 하며 채팅을 끝냈다. 상황이 어수선하다 보니 나도 자꾸 이런 저런 말에 휘둘리기 일쑤다. 오늘은 오히려 통 큰 친구의 통 큰 행동을 보며 다시 한번 휘둘리지 말자는 다짐을 해본다. 
 
반장엄마(erinj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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