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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산후조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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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일요일 오전이었다. 느즈막히 눈을 떴고 출출했다. 집 근처 자주 가던 수제 우동집의 뜨끈한 우동 한 그릇이 생각났다. 남편도 좋다며 준비해서 나가자 라는 말을 하자마자 “으앙, 으아아앙” 하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갓난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앗!!! 우리에게는 아기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하루 전 날 산후조리원에서 돌아와 아기와 집에서 맞는 전쟁 같은 첫날밤을 보내고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었다. 그 몇 시간 동안 내 침대에서 곤히 잤다고 잠시 아주 잠시 아기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 앞 우동집에 가서 우동 한 그릇 후딱 먹고 올 수 있는 것 조차 사치가 된 갓난아기를 둔 부.모.였다.
삶과 죽음의 경계 어디쯤에서 아기가 태어났고 나의 인생은 끝이 났다.
-드라마 산후조리원 中
아기를 낳아본 엄마라면 뼈까지 사무치게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명언을 줄줄이 쏟아내는 드라마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이다. 갑자기 진통이 찾아오거나 양수가 터져 병원으로 급하게 이동하고 비명소리가 몇 번 들린 후 우아하게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장면, 그동안 드라마에서 보여준 출산 장면이다. 감정이입이 될 리가 없다.
드라마 산후조리원은 그 전 후로 (민망해서)삭제되고 (모성애란 이름에 가려)조명되지 않았던 여러 단계와 다양한 감정들을 그대로 다 보여주고 있다. ‘굴욕기, 짐승기, 무통 천국기, 대환장 파티기’라고 출산과정을 묘사한 드라마 작가의 작명 솜씨에 경의의 물개박수를 쳤다. ‘임신은 고달프고 출산은 잔인하고 회복의 과정은 구차하다’는 대사를 듣고서는 무릎을 탁 쳤다. 큰 아이 출산 후 15년 동안 묵었던 체증이 쑥 내려가고도 남을 명언이었다.
산후조리원은 모유가 잘 나오는 엄마, 아기에게 젖을 잘 물리는 엄마가 최고로 대우받는 기승전모유인 이상한 합숙소이다. 그것은 내가 큰 아이를 낳았던 2005년에도 그랬고, 이 드라마를 보니 현재 2020년에도 그런 듯 하다. 당시 산후조리원 원장도 나와 마주칠 때마다 내 모유의 근황을 물었다. 수유실에는 이 순간 같은 산후조리원에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 공통점도 없는 사람들이 쭉 앉아서 가슴을 드러내고 아기에게 모유를 먹였다. 모유가 제대로 안 나오면 무능한 엄마였고 위축되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육아서에서는 아기 생후 24개월까지 모유를 먹이는 것이 좋다고 강조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모유전쟁이었다. 15년 전보다 훨씬 좋은 시설에서 훨씬 예쁘고 세련된 산모복을 입은 젊은 엄마들이 15년 전 나와 똑같은 모유전쟁을 치르고 여전히 전업맘과 워킹맘을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씁쓸한 일이었다.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매 순간이 선택이고 고민이었다. 엄마의 선택은 무거웠다.
-드라마 산후조리원 中
출산의 고귀함,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만을 조명하는 세상이 다 잠든 어두운 새벽, 인터넷 맘카페에서는 그때부터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외롭고 처절한 엄마들의 고민과 눈물로 채워진다. 모유 수유가 힘들어 분유 먹이고 싶은 나는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일까요, 잠 안 자고 울기만 하는 아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요, 갓난 아기를 두고 복직을 선택한 것이 잘한 걸까요, 독박육아 너무 힘들어요 등등.
총 8회로 종영이 된 이 드라마는 이런 엄마들의 진짜 이야기와 고민을 그렸다. 고백컨대, 8회까지 보면서 매회마다 나도 모르게 공감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진지하기만 한 드라마는 아니다. 조금은 과장된 장치를 통해 빵 터지는 재미도 있고, 통쾌함도 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서로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에 따른 선택도 존중해주는 결말이라는 점이다. 좋은 엄마의 기준은 없으니까.
“좋은 엄마는 완벽한 엄마가 아닙니다. 아이랑 함께 행복한 엄마지.”
-드라마 산후조리원 中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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