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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이 가을에 참으로 낭만적인 조사, 가와 을

[2022-10-13, 17:50:02] 상하이저널
나는 주로 자연의 색에서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이른 아침 문뜩 내다본 창 밖 풍경이 짙은 초록에서 이 계절의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매미마저 울음을 뚝 그치게 했던 뜨거운 상하이의 여름도 이렇게 마침표를 찍고 가을이 온다. 흔히 봄을 계절의 여왕이라 칭송한다. 그렇게 계절이 통째로 증발해버린 2022년. 구르며 안타까워했던 내가 아닌가! 봉쇄가 끝나면 펼쳐질 날들을 알차게 계획하며. 그러나 굳은 의지도 타오르는 여름의 태양 아래서는 맥을. 그렇게 여름이 가고 곧 10월이다.

‘그래, 오늘은 단 하루뿐. 나의 소중한 순간을 이렇게 없지. 어디라도 좋아. 상하이의 가을을 맞이하러 나가자.’

의식주만으로 봉쇄라는 비싼 배우지 않았던가. 일상을 찾아가니 다른 욕구들이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매슬로의 피라미드의 정상을 올려다본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했으니 한 발이라도 내디뎌보자. 곡식들도 고개를 숙이고 열매도 알차게 익어가는 가을이다. 나도 조금은 자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큰아이의 뒷모습에 인사하자마자 핸드폰을 열었다. 나의 상위 욕구를 채워줄 장소를 찾아 좌표를 찍고 집을 나섰다. 하늘이 높고 바람도 맑다. 이런 날은 자전거지. 튼튼한 녀석을 골라 QR을 찍고 바퀴를 굴렸다. 페리로 강을 건너 강변을 따라 내달리니 여름의 잔향이 아직 남아 코끝에 땀방울이 맺혔다.

오늘의 목적지는 'Power Station(발전소) of Art', 미술의 발전소라 불리는 ‘상하이 당대 미술관’이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처럼 발전소가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오늘의 경제적 풍요를 가져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전기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시간의 흐르며 새로운 형태의 발전소들에 밀려 흉물이 되어버린 두 발전소. 그러나 이제 이곳은 예술작품과 함께 살아 숨 쉬며 미래를 제시하는 곳이 되었다. 1 더하기 1이 꼭 2가 되지 않고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하는 문화예술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지금 ‘상하이 당대 미술관’에서는 ‘Van Cleef : 时间, 自然, 爱’, ‘王兴伟在上海 2002- 2008’, ‘直行与迁回-台湾现代建筑的路径’의 3가지 전시가 열리고 있다. 거의 일 년 동안 닫혀있던 내면의 숨구멍들이 열리는듯했다. 물리적인 생을 위한 숨이 아닌 오감을 살리는 호흡. 우리는 영장류, 즉 동물이다. 그러나 동물과는 다른 삶을 산다. 인간의 생각에는 동물과 격이 다른 깊이와 넓이가 있다. 예술적 경험은 여기에 다채로운 물을 길어 넣는다. 오늘의 순간들이 나의 앞날들을 다양하게 채색해주리라 믿는다.

우리의 기억은 생각보다 편리하게 잊어간다. 곧고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모든 것들을 안고 있을 수는 없다. 알게 모르게 가지치기 돼 가는 순간들 속에 내 삶은 더 단단해져 간다. 가을이 그런 계절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오롯이 기억 속에 새겨지거나 자연스레 지워질 수도 있다. 잊힌다고 이날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쩌면 나의 자양분이 되어 더 깊이 녹아 들어 갈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을이 바로 잊히는 기억과 닮아있다. 하나의 문장으로 역동적인 올해를 남기게 된다면 이 가을은 짙은 의미를 가진 명사나 동사보다 이들을 자연스레 이어주는 조사쯤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얼마 전 읽었던 서덕준 님의 시에서 그려내는 가을이 딱 지금의 가을이다.

* ‘이 가을에 참으로 낭만적인 조사, 가와 을’은 서덕준 시인의 시 <가와 을>의 시구에서 따온 제목이다.

화몽(snowys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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