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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in 상하이] 추억은 지글지글 노릇노릇

[2023-03-05, 06:44:40] 상하이저널
전이 그리 먹고 싶었다. 동그랑땡, 깻잎전, 동태전에, 욕심을 좀 더 부려 굴전까지. 가끔 전 생각이 날 때면 상하이의 솜씨 좋은 반찬가게의 도움을 받곤 한다. 식탐이 도져 모둠전이라도 주문한 날에는 뒷일이 걱정이다. 다른 식구들은 그다지 전을 좋아하지 않아 대부분이 내 몫이고, 그렇게 먹고 싶다가도 막상 한입 맛보고 나면 그 느낌이 아닌. 결국은 냉장고 자리만 차지하는 잔반 신세가 된다. 그제야 또 한 번 깨닫는다.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전 그 자체가 아니었다는 것을.

부모님은 서울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남쪽 작은 도시 출신이시다. 그러다 보니, 명절이나 제사 때마다 고향 방문이 쉽지 않으셨고, 가시더라도 두 분만 다녀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내게 친척들이 다 모인 왁자지껄한 명절에 대한 추억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 몇 안 되는 추억 속에 집 안 가득한 기름 냄새와 큰 소쿠리에 산처럼 쌓여 있는 전과 튀김이 있다. 우리 가족이 큰 집에 도착할 때 쯤이면 이미 명절 준비가 어느 정도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 막 부쳐진 전과 튀김을 끊임없이 집어 먹으며 엄마와 큰어머니, 친척 언니들의 대화를 들었다. 내게는 그 지역 사투리가 재밌었다. 평소 완벽한 표준어를 쓰시는 엄마도 그날 만큼은 그 지역 사람이 되어 신나게 사투리를 쓰셨다. 심각한 주제도 사투리 억양과 표현 속에서는 더 이상 진지할 수 없었다. 상상도 못 할 다채로운 표현과 리듬감 있는 추임새, 길게 늘어뜨리는 어미 등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나왔다. 고향에 돌아와 서울 타향살이의 긴장을 풀어놓으신 부모님처럼 나도 그 순간 따뜻함과 마음의 안정을 느꼈던 것 같다. 더불어 다른 음식은 더 들어갈 자리도 없이 배도 꽉 찼다.

친정도 시댁도 주로 가족끼리 단출하게 명절을 지내시니 전도 명절 음식 구색 갖추기 위해 조금만 부치신다. 그래도 전 부치려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동생들과 투닥거리기도 하고, 부치자마자 날름날름 집어먹어 엄마한테 혼나기도 하던 그 추억이 있다. 전은 역시 바로 부쳐 뜨거울 때 손가락으로 집어 먹는 그 맛이 최고인데. 결혼 후 오랜 시간 동안 해외에 있다 보니 그마저도 한참 되었다.


지난 겨울방학 동안 아이들과 한국에 머물면서 설 명절도 맞게 되었다. 평소 시부모님 두 분만 호젓하게 명절을 보내셨기에 이번에는 요란을 좀 떨어 보기로 했다. 아이들과 동그랑땡과 깻잎전을 만들었다. 속은 내가 만들고, 아이들이 모양을 만들어 밀가루를 묻혀서 주면, 나는 달걀물을 입혀 부쳤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누가 더 예쁘게 만들었는지 비교해가면서 꽤 재밌어 했다. 무엇보다 갓 부쳐진 전을 맛보여 주었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 전은 거의 먹지 않던 아이들이 제대로 된 진짜 전 맛을 알게 된 것이다. 평소에는 깻잎의 향이 싫다고 하던 아이들이 깻잎전이 맛있다며 왜 이리 조금만 준비했냐고 아쉬워했다. 

그렇게 우리 셋의 공동작업으로 2023년 설 명절의 전이 완성되었다. 사실 부치면서 바로바로 우리 입으로 들어간 양이 이미 반이었지만. 전은 설 아침 시댁에서 떡국과 함께 먹고, 친정 가족들 여행길에도 싸 가지고 가서 생색도 듬뿍 냈다. 손녀들이 만든 전 덕분에 이번 명절의 식탁도, 이야깃거리도 더 풍성해졌다. 무엇보다 앞으로는 전에 대한 추억을 아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도 한 번씩 고향과 가족을 추억하며 떠오르는 음식에 한국 음식도 자리하게 될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다. 전으로 기분 좀 내보고 싶은 날은 모둠전 주문도 주저하지 않고 마음껏!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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