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학년 무렵 친정 엄마가 사흘 집을 나가셨다. 갱년기 우울임을 나중에 알게 되었고 아무 대책이 없었던 우리 가족은 그 때서야 엄마의 의중을 헤아리고 사랑한다 표현도 더 했다. 다행히도 엄마가 갱년기에 들어설 때 집안 재정 상황이 좋아 평생 고생만 하시던 엄마는 그 즈음 등산과 수영을 시작하셨다. 3년 가까이 전국에 있는 산을 오르셨고 해외 원정도 가셨다. 매일 수영을 하시더니 그 때부터 팔순이 된 지금까지도 수영장에서 2000-3000미터를 꾸준히 오고 가신다. 갱년기 전까지 농사도 지으셨었고 손재주가 많아 여름엔 모시옷을 만들고 겨울엔 뜨개질 하느라 늘 어깨며 온 몸이 고생으로 아프셨다. 갱년기 때 시작한 등산과 수영 덕에 친정 엄마를 괴롭히던 통증들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 때 나도 갱년기가 되면 운동을 해야겠구나 막연히 생각을 했었다.
여고생 시절에도, 미혼 시절에도 운동은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하는 것도 무척 좋아했다. 친구들이 가수나 탤런트를 좋아할 때 고교야구를 보고, 농구대잔치나 배구경기를 보러 다녔다. 아이를 낳고도 자전거를 같이 타거나 에스보드를 배워 함께 타며 항상 아이들과 함께 했다. 아이들의 사춘기를 대비해 가족 운동으로 배드민턴을 시작했는데 어른들의 시합에 방해가 되니 아이들을 동호회에 데리고 가서 운동을 하는 것이 쉽진 않았다. 돌이켜 봐도 아이들을 데리고 꾸준히 배드민턴을 한 것은 칭찬할 만 하다. 덕분에 아들뿐 아니라 딸들도 운동을 좋아한다. 한국에서도 자기들끼리 친구를 초청해 기회만 되면 배드민턴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친정엄마의 갱년기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운동을 간다고 하면 무슨 운동을 하느냐 묻는다. 걷기를 하러 간다고 하면 웃는다. 오랫동안 탁구와 배드민턴을 해서 이 운동을 하고 싶지만 주부 특성상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배드민턴을 6개월 정도 쉬었다가 갑자기 해서인지 근육이 파열되어 고생한 기억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시작한 것이 걷기였다. 무엇보다 가성비가 갑이고 세월이 쌓이다 보니 내 몸과 마음에 이만한 운동이 없어 걷기 예찬론자가 되었다. 처음부터 걷기가 재밌거나 할만 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45세를 넘어가며 가끔 편두통이 찾아왔다. 체중이 늘고 건강검진을 하며 고지혈증 진단을 받고 나니 정신이 들면서도 지속적으로 할 운동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위챗을 통해 연결된 수많은 이들이 ‘werun’이라는 걷기에 가입되어 있다. 매일 몇 걸음을 걸었는지 하루를 마감할 때 순위가 매겨진다. 반가운 이름들이 걷기로 건강을 가꾸는 모습을 보며 나도 격려를 받는다. 누군가가 내가 걸은 걸음을 응원할 때 미소도 지어진다. 본격적으로 걷기를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듯 하다. 기억을 더듬으니 작년 9월부터인듯 하다. 걷기를 시작한 나를 칭찬한다. 시간만 허락되면 무조건 나가서 걷는다. 30년 전, 갱년기 때 시작한 운동으로 더욱 건강해진 친정 엄마의 기억을 떠올리며 걷는다. 걸으러 간다면 웃던 아이들도 이젠 걷기에 진심인 엄마 덕에 걷기를 운동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오늘도 나의 갱년기를 걷고 또 걷는다.
Renny(denrenhan@naver.com)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