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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190] 타인을 듣는 시간

[2023-04-25, 07:48:52] 상하이저널
김현우 | 반비 | 2021년 11월
김현우 | 반비 | 2021년 11월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레 묻는다. 누군가의 독서 목록을 듣노라면, 그의 관심사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 PD는 어떤 책을 읽을까? 이 책의 표지에는 ‘다른 세계를 여행하는 다큐멘터리 PD의 독서 에세이’라고 쓰여 있다. 저자 김현우는 EBS에서 다큐프라임 <성장통>, <내 운동화는 몇 명인가> 등 다수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현직 PD이다. 번역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열세 권의 책 제목이 함께 있는 목차를 보고 나는 적잖이 놀랐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외에는 듣도 보도 못한 책들이었다. 그만큼 나와 다른 세계, 다른 관심사로 살고 있다는 증거다. 내가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그의 세계가 몹시 궁금해졌다. 

책에서 처음 밑줄을 그은 구절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쩌다가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까지 무례하게 되었는가? 그런 무례함에 노출된 사람들의 세계를 알려 주고 싶었다. 당신들이 아무렇지 않게 차별하는 이 사람들은 실은 이런 사람들이라고. 이 사람들에 대해 알고 나면 당신들의 무례함을 다시 돌아보겠느냐고, 혐오를 내뱉는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었다.“ 

차이를 차별로 경험하고 있는 이들의 삶을 기록해 전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말에서 뜨거운 ‘사명감’이 느껴졌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실로 다양했다. 컨테이너선에서 12년째 선원생활을 하는 미얀마 청년, 애리조나주의 자폐인 공동주택 사람들, 코타키나발루 고무공장의 할아버지, 태국에서 만난 성소수자 M, 장애인-비장애인 커플들, 범죄로 수년간 중등 교육과정을 마치지 못한 복교생들까지…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면, 어쩌면 살면서 한 번도 마주하지 못했을 사람들… 내게는 그저 먼 곳의 풍경 같았다. 

책 곳곳에는 다양한 인터뷰이를 만나면서 갖게 된 그의 일에 대한, 사람에 대한 지혜가 담겨있다. 

“타인의 언어를 익히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타인의 언어가 자연스러워지기까지 그들이 걷는 길을 걷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타인의 삶의 구체적인 디테일을 보아야 한다. 그런 디테일이 그이의 ‘안으로부터의 이야기’를 구성할 것이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교본처럼 삼는다고 언급된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였다. 

“개인들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들은 사회적 기록이 될 수 있는가?…… 어떤 사태는 개인적 , 사회적 차원의 구분 없이, ‘통째로’ 경험되기에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따로 떼어 낼 수 없다.”

개인의 기록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글귀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중국 상해에서의 봉쇄 일상을 더 부지런히 기록해야 한다.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말이다. 이 기록은 개인의 기록, 나아가 사회적 기록이 될 테니까. 

<타인을 듣는 시간>은 책과 일, 사람과 삶을 연결하는 한 다큐 PD의 에세이다.  읽는 내내 나는  인터뷰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저자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그가 PD로서, 작가로서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담아내는 일을 멈추지 않길 응원하게 됐다. 

끝으로, 책은 독자에게 말한다. 

“자.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라고.

김영경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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