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난 지 꼭 20년이 되던 날, 추억이 서린 동네를 그와 함께 찾아갔다. 한국에 있던 나를 기다리며 그가 상하이에서 혼자 지내던 동네는 마침 프랑스 조계지에 있다. 어둠 속에 줄지어 서 있는 플라타너스 이파리마다 오랜 그리움이 묻어 있는 듯했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한때는 그런 사랑을 낭만이라 여기기도 했지만, 찰나의 단면만으로 한 사람을 꿰뚫어 볼 수 없다는 것쯤은 이제 잘 안다. 순간의 느낌이나 겉모습만 보고 사랑에 빠지는 건 얼마나 위험한가. 이런 끌림이 몹시 강렬한 건 자신의 애착 상처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애착 유형이 불안형이던 나는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에 끌리곤 했다. 반짝하는 설렘 뒤에 이어지는 불화와 고통, 이른 파국,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이별. 무의식적으로 내가 필요하다는 사람을 끌어당겨 놓고 사랑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악순환을 반복하던 때 그를 만났다.
“귀여워요.”
감자튀김과 소주를 앞에 두고 토할 뻔했다. 나는 여덟 살 때 이미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생의 이면을 보았다. 너무 일찍 늙어버린 것이다. 지우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검은 크레파스로 북북 덧칠하듯 나는 머리를 시커멓게 물들이고 화장도 어둡게 했다. 그때 내가 지우고 싶었던 건 가난과 수치, 불화로 뿔뿔이 흩어진 원가족. 귀엽다는 말은 내 삶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붙들고 싶었다. 사랑은 상대에게서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걸 발견하는 눈이다. 그가 시커먼 그림에서 덧칠 전에 있었으나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빛을 알아봐 준 것이다.
진정한 사랑은 함께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사람은 죽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와 함께 한 20년 동안 나는 많이 달라졌다. 부모도, 식구도, 친구도 모두 나를 버리고 떠날 거라는 불안과 두려움에 떨던 불안정 애착유형에서 이제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형이 되었다. 나의 한 단면만 보고 설익은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입체적으로 보며 깊이 이해해 주는 누군가와 함께 나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앙드레 고르 중)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24년이나 간병했던 앙드레 고르가 꽃길을 걸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이 씨실 날실로 촘촘히 엮어 만든 사랑의 문양은 여전히 아름답다. 이제 내 삶의 40%를 함께 한 사람. 그와 함께라면 나이를 먹는 것도 기분 좋은 설렘이 된다.
글·사진_ 윤소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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