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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214] 마녀의 마법에는 계보가 없다

[2023-10-30, 15:48:37] 상하이저널
에밀리 디킨슨 | 파시클 | 2019년 11월
에밀리 디킨슨 | 파시클 | 2019년 11월
저에게는 아주 어린 스승이 있습니다. 그 아이는 겨우 열일곱의 나이지만 제 곁에 큰  산처럼 우뚝 서있기도 하고, 때론 정원의 작은 새처럼 재잘재잘 삶의 감동을 노래하기도  하는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저는 그녀로부터 새로운 영감을 얻곤 하기 때문에 비록 제 딸이지만 쉽게 대하기 어려운 스승으로 존중합니다. 

어느 날 딸이 저에게 다가와 또 재잘대기 시작합니다. 수업 시간에 읽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영문으로 유려하게 낭독해 주더니 영어가 짧아 이해 못 한 저를 위해 자신의 감상까지 살포시 더해 해석을 해주느라 신이 났습니다. 저는 딸아이가 읽은 책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줄 때가 즐겁습니다. 그날도 한껏 들뜬 딸을 통해 재해석된 에밀리 디킨슨의 시와 시인의 삶 이야기를 듣다 보니 덩달아 설레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일을 서둘러 끝내고 식구들이 저마다 자기 일에 집중하느라 저를 찾지 않는 자유시간을 이용하여 모처럼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푹 빠져 감상을 시작해 봅니다. 제법 추워진 날씨에 뜨끈한 온수 매트를  깔고 앉아 귤까지 까먹으며 읽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없네요. 어둑어둑한 방구석에 앉아서도 대서사시를 환하게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딸의 표현에 의하면 에밀리 디킨슨은 19 세기 대표 히키코모리랍니다. 그녀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그 시대의 많은 여자들이 그랬듯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 여자 신학교에 입학은 했으나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자퇴를 하고 맙니다. 기독교 교리를 강요한 학교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고 하던데, 시인은 새초롬하고 가녀린 외모와 달리 자아가 강하고 속이 꽉 찬 여성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에밀리 디킨슨의 시들을 읽으면 그녀의 여리여리한 몸속에 세계를 제패할 장군감이 들어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에밀리 디킨슨은 학교를 자퇴한 후, 병이 든 어머니를 돌보며 본격적인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결혼도 하지 않고 애머스트에 있는 자택에 콕 박혀  평생을 지냅니다. 집 밖을 나가기는커녕 40대 이후에는 방 밖에도 나오지 않고 극소수의 사람만을 만났다고 하니 딸의 말대로 그녀를 진정한 히키코모리로 인정합니다. 너무나 신기한 것은 그 좁고 한정된 공간에 살며 어찌 그리 놀라울 정도로 깊고 넓은 통찰력으로 대차게 시들을 썼는지 그녀의 상상력과 천재성을 가늠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꽁꽁 숨어 온 세상을 그리던 그녀답게 에밀리 디킨슨의 시는 생전엔 몇 편 정도만 발표했을 뿐, 약 1800 편에 이르는 그녀의 수많은 시들은 대부분 유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오늘은 신비주의자 에밀리 디킨슨이 시 속에 숨겨둔 큰 세상과 아름다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시집에서는 유독 페미니스트로서의 에밀리 디킨슨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예상을 뒤엎는 단어로 시를 쓰는 유니크함과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위트까지, 에밀리 디킨슨의 시대를 앞서가는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드실지 많이 궁금하네요.



최인옥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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