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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중국을 대표하는 백주인 '마오타이주’(출처: 바이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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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무궁한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 길고 길었던 중국의 역사만큼 중국에는 이름난 명주들이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국주(国酒)라는 타이틀을 얻은 백주는 마오타이주(茅台酒)가 유일하다. 마오타이주는 중국을 대표하는 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공산당의 초대 주석인 마오쩌둥이 사랑했던 술, 명실상부 중국을 대표하는 술인 마오타이주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마오타이주의 역사와 제조 과정
[사진=마오타이주의 제조 공정(출처: 163)]
마오타이주는 구이저우성(贵州省) 런화이시(仁怀市) 마오타이전(茅台镇)이라는 마을에서 생산되는 장향형(酱香型) 백주이다. 장향형 백주는 향과 맛이 장처럼 진한 것이 특징인 술이다. 장향형 백주를 생산하려면 고온에서 띄운 누룩이 필수이다. 매년 단오절 기간에 마오타이전 마을에서는 누룩을 만들어 수수를 찌고 이 둘을 섞어 발효시킨다. 발효가 완료된 덩어리를 증류기에 옮겨 담고 재차 발효시킨다. 이렇게 나온 증류주를 다시 수수와 누룩을 섞어 다시 숙성시키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을 총 7번 거쳐 얻어낸 증류주를 2-3년간 숙성한 이후 적절히 배합한다. 배합이 완료된 술을 재차 2-3년을 다시 숙성하면 드디어 우리가 아는 마오타이주가 완성된다. 총 5-6년의 시간동안 정성을 들여야 비로소 마오타이 한 병이 완성되는 것이다.
마오타이주는 어떻게 국주가 되었나
[사진=마오타이 생산 마을 마오타이전(출처: 샤오홍슈)]
왜 마오타이가 중국을 대표하는 술이 되었는지 알아보려면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대장정 시기, 중국 공산당의 홍군이 마오타이주를 생산하는 마을인 마오타이전을 지나가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마오타이주를 대접받았다. 기나긴 대장정으로 심신이 지친 홍군은 마오타이주를 마시며 피로와 통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후에도 마오쩌둥은 이를 잊지 않고 마오타이주를 찾았고, 국가적 명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1949년, 마오타이주는 국가 연회주로 지정되었으며, 이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방중 만찬 자리에 등장하는 등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사용되었다. 이에 이어 1975년, 나라를 대표하는 술인 국주(国酒)로 선포되었다.
11월 24일 기준 마오타이의 총 시가총액은 2조 2,436억 위안, 한국 돈으로 408조가 넘는 금액이다. 세계를 대표하는 음료 기업인 코카콜라 컴퍼니의 시가총액이 306조인 것을 감안하면, 마오타이의 위상을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마오타이주의 끊임없는 변신
[사진=마오타이에서 출시한 아이스크림(左)과 마오타이 칵테일(右)
최근 중국의 젊은이들은 도수가 높은 백주보다 상대적으로 부담 없는 낮은 도수의 주류를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내 백주 생산량은 년마다 줄고 있다. 이에 따라 마오타이 역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며 새롭게 변모하고 있다. 마오타이는 지난해 5월 컵 아이스크림을 출시했다. 아이스크림은 출시와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1년 만에 1,000만개 이상이 팔려나갔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마오타이는 마오타이가 함유된 라떼, 초콜릿, 칵테일을 출시했다. 제품들이 화제가 된 이유는 마오타이주가 지닌 고유한 매력과 특별함은 유지하면서도, 접근성 있는 가격으로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공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오타이의 새로운 시도는 현재 소비 흐름에 공감하며 잠재 고객 유치를 추진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마오타이가 지닌 브랜드의 가치와 중국 소비자들의 마오타이 사랑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되는 이유이다.
학생기자 허준혁(난징대 광고학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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