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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트막한 매봉산 정상에서 맞이한 새해 첫 해돋이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해돋이지만 실오라기 같은 붉은 기운에서 나뭇가지들 사이로도 금세 그윽하고 찬란하게 그 충만함을 드러낸 도도하고 어마어마한 빛을 마주한 순간, 태초의 감동과 경외심을 느끼게 되었다.
인류가 만들어낸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이제 2024년에 이르렀고 이 새로운 이정표의 처음 순간에 자신을 온전히 맡겨 버리고 맞이한 신년 첫 해돋이라 새삼 감격스럽다. 따지고 보면 시간이 흘러간 것이 아니라 속절없이 흘러간 것은 우리뿐인 것을.
한국에서 새해 첫 해돋이를 구경할 수 있었던 건 방학을 일찍 하는 대학 때문이었다. 12월 중순부터 딸의 부름을 받고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딸의 자취방을 찾아 구색을 갖추는 것도 대가족 살림살이 준비 못지않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여기서 새해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오면 상하이에서 연을 맺었던 친한 언니들을 재회할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한국서 의류 디자이너를 하다가 상하이에서 20년간 “경단녀”로 지낸 후 귀국해 몇 개월 만에 디자이너로 다시 보란 듯이 재취직한 언니가 있는가 하면, 한국서 과거 오랜 기자 생활을 했고 상하이서 이십 여 년 주부로 사는 동안 미술에 심취해 상하이와 한국뿐만 아니라 드디어 프랑스에까지 작품을 출품하는 멋진 작가로 성장한 언니도 있었다. 내가 피부로 느끼는 세상은 정상과는 한참 거리가 먼데 이런 불가사의함과 혼돈함 속에서도 자신의 꽃을 피워내는 언니들을 보니 문뜩 감동이 밀려왔다.
사실 이 몇 년간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거시적 환경은 사십 대 후반에 들어선 나에게도 생경함 그 자체이다. 근간에 나라와 민족 사이에 균열과 갈등이 이처럼 커지고 문명이 이처럼 급속하게 퇴행하던 시절이 있었던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포퓰리즘에 편승하고 부채질하며 세상을 더욱 자기 입맛대로 편을 갈라 이득을 챙기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을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그네들만 사는 세상이 아니었다. 자기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욱 바람직한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수많은 보통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의 주축이었다. 새해 벽두에는 주변에 긍정적인 덕담을 전하고 싶지만, 많은 이들이 체감하는 세상이 그다지 밝지 않음에 마음이 무겁다.
21세기는 결코 우리가 어릴 때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답고 희망적인 세상이 아니었다. 상상하기도 싫은 암울한 현장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인간 사회가 아직 기대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건 어떻게든 살아가야만 하는 자기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애쓰는 인간이기에 일찌감치 성찰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힘들었던 100년 전 그리고 50년 전보다 현재의 우리가 더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사고력이 있는 인간이라면 급변하는 외부의 신호와 자극에 장단을 맞추려고 애를 쓰며 불안해하기보다 이젠 본연으로 돌아가 내면에 집중하고 차분함과 평정심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키워가는 게 어떨까 싶다. 인간이 진정으로 풍성한 인간일 때 우리에게 비로소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싹틀 수 있지 않을까.
소이(mschina05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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