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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밀러 | 곰출판 | 2021년 12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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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Why Fish Don't Exist: A Story of Loss, Love, and the Hidden Order of Life
과학 서사를 통하여 “생명체 하나하나 속에 숨겨진 가치를 알아봐 주고 사랑하자”는 가장 인문학적인 주제를 전달하고 있다.
부제가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놀라움으로 읽었던 책이다.
처음 아무런 정보 없이 이 책을 접했을 때나, 다 읽고 난 후 지금에 되어서나, 이 책은 에세이지만 소설 같기도 하고 과학책 같기도 하다. 누군가 소설책이냐 물었을 때 그냥 '네'하고 대답했을 정도로 어느쪽에 분류할지 애매한 책이다. 어찌 보면 고발서 같기도 하다.
집착에 가까울 만큼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19세기 어느 과학자의 삶과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진실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직관과 진실의 관계, 겉모습에 대한 미혹, 삶의 의미, 분류학, 우생학… 생각할 거리가 아주 많은 책이다. 오싹하고 잔인하고 무자비하다. 내가 멋지다 생각했던 사람이 이런 악당이었다니.... 실제로 책이 발매되고 나서 조던의 이름을 땄던 건물 몇 곳이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다고 한다.
주인공은 여성 과학 저술가이다. 어린 시절부터 겁이 많고 우울함을 자주 느꼈다. 곱슬머리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었지만 3년 만에 헤어진다. 충격을 받고 자신을 지탱해 줄 만한 것을 찾는데 그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과학자 겸 교수였다. 그는 긍정의 화신이었고 굽히지 않는 끈기를 가졌다. 따라서 그녀는 그를 멘토로 삼아 우울증을 이겨내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세상의 파괴자였다. 긍정적 자기 확신이 너무 과해서 세상에 해서는 안되는 짓을 너무 했다. 세상을 분류하고 나누어서 장애인을 하등하다고 구분 짓고 강제적으로 불임시술을 시켰다. 세상을 자기 기준으로 분류하여 자기를 막는 것을 뭉개버린다.
그녀는 깨닫게 된다. 무조건적인 낙천성, 자기 확신이 방패가 되어줄 수 없다는 것, 오히려 칼이 되어 타인을 겨누게 된다는 것을 소설 같은 줄거리, 과학과 심리학을 넘나드는 구성으로 풀어가고 있다. 회고록이나 전기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가 '어류'라고 구분 짓는 물고기는 포유류, 파충류처럼 제대로 된 생물 분류 체계가 아니라고 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 사실에 대해 나도 놀랍고 이것이 엄연한 사실이라는데 나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버섯은 식물보다 동물에 가깝고, 박쥐는 쥐보다 낙타와 훨씬 가깝고 고래는 사슴과 더 비슷하다고 한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의 꿈을 위해 한 여자를 독살하고, 우생학을 밀어붙여 미국 내 수많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낙태 불임 시술을 시킨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출발해서 과학으로 이어지고, 위인전이 되었다가, 충격적 사실로 넘어갔다가 자신의 커밍아웃까지 이어진다. 현재도 스탠퍼드 대학에 아가시 동상,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민들레 법칙을 소개한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민들레가 누군가에겐 약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소원을 비는 존재이고, 누구에겐 잡초이듯 말이다. 모든 것은 소중하다. 사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중요하다. 직관이 진실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내내 흐른다. 우리는 전에도 틀렸고 앞으로도 틀릴 것이다.
어렵고 난해하기도 도대체 사실인지 아닌지 놀라운 이야기들이 나오고, 하지만 읽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철학적 접근까지 다룬다. 우리가 정해 놓은 명명법과 질서 부여 방법에서 탈출하면 또 다른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도 담겨있다.
수십, 수백 년간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한순간 진실이 아닌 것이 될 수도 있다. 생명의 이 아름다운 존재 가치에 서열이 있을 수 있을까? 서열의 사다리로 그어서 줄을 세울 수 있을까?
나은수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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