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영아~” “선영아~~”
무거운 발걸음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고 있을 때,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목소리 같기도 하고... ‘너무 긴장돼서 환청이 들리나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선영이’를 부르는 목소리는 갈수록 또렷해졌고 나는 곧 그게 현실 속 우리 엄마 목소리임을 깨달았다.
그 날은 대학입시 날이었다. 우리는 선지원 후시험의 거의 마지막 세대였다. 가고 싶은 대학과 학과에 미리 지원서를 제출하고 시험은 나중에 보는 거다. 그 시험성적에 일부 내신을 더한 점수로 당락 여부가 결정된다. 인생의 중대사를 단 한 번의 시험으로 결정하다니~! 평소 비슷한 실력이었더라도 걱정 많고 소심하며 멘탈이 약한 친구들은 하향 안전 지원을 했고, 배짱(근자감?) 있는 친구들은 상향 지원을 했다.
원래 잠이 많던 나였는데 대입 시험 전날엔 걱정과 긴장으로 잠을 못 이뤘다. 다음날 시험을 위해선 자둬야만 하니까 ‘감은 눈’으로 밤을 지새운 거다. 그렇게 날이 밝았고, 나는 수면 부족으로 평소보다 실력 발휘를 못 할 거라는 생각에 걱정이 태산이었다.
아빠가 운전하시는 차를 타고 나중에 ‘우리’ 학교가 된 그 학교에 부모님과 함께 갔다. 엄마는 내 점심 도시락통을 들고 고사장 건물까지 걸어서 바래다주셨다. 수험생이 아니면 건물 안까지는 들어갈 수 없었다. 엄마가 나를 목놓아 불렀던 건, 내가 갖고 들어갔어야 할 도시락통이 아직 엄마 손에 들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서였다. 나는 계단을 되돌아 내려가 도시락통을 받아왔고, 걱정과는 달리 무사히 시험을 치렀다.
[사진=선지원 후시험 제도의 한국 대학입학 학력고사 시절(출처: 네이버)]
시험이 끝나고 답을 맞춰 보니 점수가 많이 남아 돌 정도로 안정적인 합격권이었다. 엄마와 나는 해방감을 맛봤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답을 밀려 쓴 거 같다는 의구심에 휩싸였다. (그렇다. 나는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인가 보다.) 시험 이후 합격 발표가 나기까지가 가장 놀기 좋은 시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나와 엄마는 근심걱정이 깊어만 갔다. 엄마는 나중에는 “얘 걱정하지 마, 까짓 거 재수하면 되지!”라고 위로해 주셨다. 드디어 발표 날, 엄마와 나는 합격을 축하한다는 그 기계음을 영원히 들었던 것 같다.
중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인 ‘가오카오(高考)’가 끝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다 돼간다. 올해 가오카오엔 사상 최대인 1,342만 명이 응시했단다. 응시자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는 교육열 고조, 취업 경쟁 심화, 중국 정부의 교육에 대한 투자 증가로 인한 고등 교육 수혜 학생 증가 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입시와 다른 점은, 중국엔 ‘내신 전형'이 없고 가오카오 성적으로만 대학에 진학한다는 점, 시험기간이 2~4일이나 된다는 점, 지역별로 시험문제와 커트라인이 다르다는 점 등이다. 베이징대, 칭화대, 푸단대, 상하이교통대, 저장대, 중국과기대, 난징대, 통지대(상하이), 우한대, 하얼빈공대, 시안교통대 등이 중국의 자타공인 명문대이다.
[사진=중국 대학입학시험 '가오카오(高考)'시험장으로 향하는 수험생(출처: 바이두)]
중국에서도 응시생이 시험장을 잘못 찾아가거나, 지각한 학생을 경찰차가 급히 고사장까지 데려다주거나 하는 일들은, 매년 가오카오 당일의 흔한 풍경이다. 어떤 수험생이 시험 당일 신분증을 하수구에 빠뜨렸는데 다행히 경찰서에서 임시신분증을 빠르게 발급해 줘 무사히 시험을 치른 일도 있었고, 올해엔 학생이 아닌 감독 교사가 시험장을 잘못 찾아가서 교통경찰이 오토바이로 가야 할 고사장까지 데려다 준 사건도 있었다 한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인가 보다. 대입 수험생 뿐 아니라, 공부하고 시험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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