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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상하이 262] 관객모독

[2024-12-18, 10:56:49] 상하이저널
페터 한트케 | 민음사 | 2012년 11월
페터 한트케 | 민음사 | 2012년 11월
지금껏 읽은 책 중 가장 독특하다고 느낀 작품, <관객모독>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9 노벨문학상 수상자 페터 한트케(1942년~, 오스트리아)의 20대 시절 작품인 <관객모독>은 1966년 희곡집으로 출간되었다. 같은 해 무대에 올려진 초연 때부터 관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면서 세계 연극계를 뒤흔든 현대극의 혁명적 사건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왔다. 페터 한트케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다가 4학년 때 소설 <말벌들>로 등단했고 이듬해 전통적 연극의 형식을 파괴하고 과감한 언어 실험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관객모독>을 통해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무슨 말장난 같기도 하고 랩 같기도 하고 광고 카피 같기도 한 짤막한 문구로 작품 전체가 사연 없이 도배된 듯한 형식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작품 초반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여러분은 생각 없이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여러분의 생각을 파고듭니다. 여러분에겐 속셈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여러분의 속셈을 파고듭니다. 여러분은 함께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듣습니다. 여러분은 실감 나게 이해합니다. 여러분은 실감 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자유롭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에 얽매여 있습니다.” (p.19)

관객에 대해 ‘여러분’으로 시작한 호칭은 나중에는 ‘너희들’로 바뀌면서 점입가경을 달려, 끊임없이 퍼붓는 욕설과 함께 현대 사회의 위선과 거짓을 조롱하면서 절정을 이룬다. 전통적인 연극에 등장하는 시간, 장소, 행위, 감정 이입, 카타르시스 등 요소들은? 없다. 실험적 글쓰기의 대가인 페터 한트케의 대표작답게 <관객모독>은 “문학의 틀을 완전히 깨부순다”는 평가와 함께 가장 도발적인 희곡 중 하나로 “묘하게 빠져드는 작품”으로 불린다. 한국에서는 1978년 초연되었고 최근에도 공연되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아직 연극으로 접해보진 못했다. “연극을 보러 가지만, 우리는 지독한 현실을 보게 된다. 공연장에 갇혀 모독을 견딘다”는 어떤 관객의 감상평을 보니 더욱 궁금해진다. 

창작하는 장르의 폭이 넓은 페터 한트케는 50년 가까운 작품 활동 기간에 희곡 <카스파르>(1968), <아직도 폭풍>(2010), 시집 <내부 세계의 외부 세계의 내부 세계>(1969), 소설 <소망 없는 불행>(1972), <모라비아 강의 밤>(2008) 외에 일기체 기록문, 사화집, 에세이, 영화 대본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다. 종종 스스로 수상을 거부한 상 외에도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상, 페터 로제거 문학상, 실러 상, 뷔히너 상, 잘츠부르크 문학상, 대 오스트리아 국가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2019년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로는 “독창적인 언어를 통해 인간 경험의 주변부와 특수성을 탐구한,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작품을 창작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관객모독>은 상당히 개성적인 작품으로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 편이어서, 새로운 형식의 연극 세계를 열게 됐다는 극찬과 함께 “이야기가 없는 현학적인 서술”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받기도 하는 점은 감안하고 작품을 접했으면 한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언어를 따라갈 것, 이라고 귀띔해 드리고 싶다.  

최승희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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