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사랑하던 아빠는 담배 연기처럼 떠났다. 벌써 10년이 넘었다. 믿을 수 없는 일도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잊히게 되는가 보다. 아빠의 생일도 제삿날도 가물가물한 것을 보면 말이다. 아빠와의 이별을 인정하지 못했던 엄마도 어느덧 편안한 모습이다.사람 좋아하는 아빠 덕분에 마실꾼들로 북적였던 우리 집.오가는 사람 밥해 먹이느라 손에 물 마를 날 없던 엄마. 일하랴, 손님들 챙기랴, 시어른 모시랴, 어린 자식들 돌보랴 하루 종일 종종걸음 치던 엄마의 무릎에는 인공 관절이 훈장처럼 박혀있다. 그 노고에 대한 보상을 아빠로부터 받았어야 했는데 야속하게도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떠났다.
아빠의 각혈 흔적을 찾아낸 건 엄마였다. 병원 가기를 극도로 싫어하던 아빠는 철저히 몸상태를 숨기고 있었다. 다급하게 병원을 찾았을 땐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의사는 폐암 4기라는 진단과 함께 앞으로 남은 시간은 6개월이라는잔인한 통보를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마지막 한 달은 통증이 심해 눕지도 못한 채 앉아서 까만 밤을 지새워야 했다.아빠는 독한 진통제로 섬망 증상을 보이다가 정신이 맑아지면 한 세상 즐겁게 살아 여한이 없다며 고마웠노라 말했다.
나는 아빠가 병을 얻은 후 처음 나눴던 통화 내용을 잊을 수 없다. “아빠, 빨리 나아서 상하이에 놀러 오셔야지요?” “그럼, 가야지. 가을에 갈게.” 가을? 왜 가을일까? 가을이란 두 글자가 날카롭게 가슴에 박혔다. 농촌 사람들에게 가을은 가을걷이로 바쁜 시기다. 한나절 다녀오는 단풍놀이는 가능해도 해외여행을 가기에는 마음도 몸도 분주하다. 김장을 담그는 초겨울까지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 아빠가 가을에 온단다. 나는 내내 가을에 대해 생각했다. 아빠와의 작별이 어쩌면 가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움이 밀려왔다. 예감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날의 대화를 꽁꽁 묶어 가슴에 눌러 두었지만 예정된 수순이라는 듯 아빠는 가을에 우리 곁을 떠났다.
아빠를 오대골 산자락에 묻고 상하이로 돌아온 어느 날, 털퍼덕 주저앉아 창밖을 바라보는데 한 줄기 바람이 불어와 나를 감싼다. 살갗을 에워싸는 느낌이 다정하면서도 포근했다. 그리고 바람 사이에서 “OO아!” 하는 짧고 강한 외침을 들었다. 순간 나는 아빠가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아빠? 아빠지? 아빠가 온 거 맞지? ”허공에 소리치며 참았던 울음을 쏟아냈다. 아빠가 말한 가을에 온다는 건 이것이었구나. 바람이 되어 찾아왔구나. 타국에서 허망한 마음 어찌 못하는 딸을 보러 왔구나. 가슴 속에 숨겨둔 비밀 하나가 바람과 함께 풀려 나갔다.
세상을 떠난 자가 보내는 메시지를 사후 통신이라고 한다. 가을날 바람 속에 들려오던 외침은 아빠의 메시지라 믿고 있다. 잘 있니? 이렇게 중국까지 찾아왔단다. 가을에 온다는 약속을 지켜서 다행이다. 아빠는 잘 있으니 걱정 말고 우리딸도 잘 살아라. 이것은 아빠가 내게 주는 마지막 위로고 선물이었다. <죽음은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다>는 말이 있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곳으로의 이동이고 시작일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을 아빠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다.아빠, 잘 지내고 있지요? 이곳에서의삶은 우리가 기억해 줄게요. 마음 편히 잘 가요. 언젠가 새길에서 아빠를 만난다면 사무치게 그리웠노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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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일기(me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