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상하이방은 상하이 최대의 한인 포털사이트입니다.

[신선영의 ‘상하이 주재원’] 상하이에 그가 왔다

[2023-08-05, 06:26:58] 상하이저널
해외여행이 흔치 않았던 시절, 아버지는 업무상 해외 출장이 잦으셨고, 출장 다녀오신 트렁크를 열 때마다 나는 애써 흥분을 참으며 바싹 다가앉아 눈을 반짝이곤 했다. 가방 속엔 당시 국내에선 찾기 힘든 고급진 디자인·소재의 예쁜 옷이나, 이국적인 수십 가지 색상의 색연필 세트, 팬시한 소녀 취향의 필통 세트도 있었고, 몽마르뜨르 언덕에서 구입하셨다는 풍경화가 나오기도 했다. 출장 가기 전 아버지는, “이번엔 뭘 사올까? 뭘 갖고 싶니?”라고 물어보시곤 하셨다. 

어느 날엔가 미국 출장 가시기 전 내게 주신 질문에, 당시 팝송을 즐겨 듣던 나는, ‘괜찮은 가수’의 카세트테이프를 주문했었다. 그 때 아버지가 음반가게 점원에게 물어 골라 사 오신 테이프 중 하나가 돈 맥클린(Don MacLean) 히트곡 모음집이었다. 푸른색 셔츠를 입은 아직 젊은 그가 환하게 웃고 있는 커버 사진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맥클린 노래 중에선 얼마 전 백악관 국빈만찬에서 불렸다는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도 신나고 유쾌해서 좋았지만,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서정적인 ‘빈센트(Vincent)’이다. 처음 들을 땐 설마 고흐를 두고 만든 노래인 줄 몰랐었다. 어릴 적 위인전집에 포함돼 있던 ‘고흐’ 편을 읽고, 자기 귀를 자르다니 웬 끔찍한 미치광이인가 싶었고, 그런 어두침침한 광인(?)보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다재다능한 천재가 더 멋있어 보였다. 훗날 시간이 가고 어른이 되면서, 그의 외로움과 그가 표현코자 했던 아름다움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살면서 세상의 많은 지역을 가봤지만, 결혼 전 어느 해 여름, 동생과 다녀온 프로방스 여행이 최고였다.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자취를 흠뻑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등 그의 그림 중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밤의 어두움에 대비되는 황금빛 ‘별’들은 마치 삶이 팍팍하고 힘들수록 꿈과 희망은 더 빛난다고 말해주는 듯하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외우고 다녔던 문학소녀(?)였던 내가 고흐를 좋아하는 것도, 바로 그 강렬한 ‘별’빛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화가 고흐가 상하이에 왔다. 그것도 디지털 옷을 입고. '반 고흐 얼라이브(Van Gogh Alive)' 전시회. 6월 어느 날, 상하이 엑스포 박물관에서 개최되고 있는 이 전시회에 우리 진출 기업 대표 분들과 함께 방문했다. 고흐의 미술 작품, 친필 원고, 편지 등을 멀티미디어 형식으로 전시해 요새 유행하는 ‘몰입형 체험’을 하게 해 준다. 고흐가 머물렀던 아를르의 작은 방과, 그가 그렸던 해바라기 밭을 지나 디지털 전시공간으로 들어서면, 그의 글과 그림으로 가득한 수많은 화면이 사방에 펼쳐진다. 그곳의 모든 면(面)이 캔버스이고 도화지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곳에서 하루 종일 있으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홍콩, 도쿄, 싱가포르 등을 능가하는 아시아의 문화중심으로 떠오른 상하이로, 각국 유명 공연과 전시팀들이 몰려들고 있다. 상하이가 좋은 또다른 이유다. 지금 이곳 동방의 진주 상하이에서 150년 전 네덜란드 사람 고흐를 영접하고 싶다면, 그의 작품과 맥클린의 ‘빈센트’를 좋아하면서 필자처럼 새롭고 특이한 걸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감히 말해주고 싶다. “이 전시회 강추!”


무협 최초의 여성 중국 지부장. 미주팀에서 미국 관련 업무를 하다가, 2007년 중국 연수를 신청, 처음으로 중국땅을 밞았다. 이후 상하이엑스포 한국기업연합관, 베이징지부, 중국실, B2B·B2C 지원실 근무 및 신설된 해외마케팅실 실장으로 3년간 온·오프라인 마케팅 업무를 하면서, 주말마다 대학에서 전자상거래, 마케팅, 유통, 스타트업 등을 가르쳤다. 이화여대 영문학 학사, 중국사회과학원 경영학 박사. 저서로 ‘박람회 경제학’이 있다.
cecilia@kita.net    [신선영칼럼 더보기]

전체의견 수 0

댓글 등록 폼

비밀로 하기

등록
  • [김쌤 교육칼럼] 가지 않은 길 hot 2023.08.02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 [상하이의 사랑법] 혼자지만 외롭지 않다 hot 2023.08.02
    집 근처에 ‘핫플’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찾아간 곳은 판롱톈디(蟠龙天地). 차에서 내려 그곳에 들어선 순간, 복잡했던 머리가 하얗게 비어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
  • [건강칼럼] 휴가철 치명적 질환 주의... 건강한.. hot 2023.08.02
    본격 휴가철을 맞아 즐겁고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 불행이 되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할 질환들이 있다.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기능 상실과 심지어는 사망까..
  • [GJ 컨설팅]외자기업 중국 국내 상장 Q&A hot 2023.07.28
    1.외자기업이 중국에서 상장할 수 있나? 외자기업이 중국에서 상장할 수 있다. 외상투자기업 국내상장의 법률 및 정책 근거는 아래와 같다.
  • [茶칼럼] 백차(白茶)로 이겨내는 무더위 hot 2023.07.22
    상하이의 여름은 17번째 맞이해도 낯설다. 찜질방 안에 있는 듯한 무더위를 슬기롭게 이겨내기 위해서는 마시는 것 하나라도 잘 선택해야 한다. 이럴 때 차를 즐기는..

가장 많이 본 뉴스

종합

  1. 샤오미 '솽스이’ 매출 6조원 돌파,..
  2. 2000만 유튜버 리즈치 3년만에 컴..
  3. [인물열전 2] 중국 최고의 문장 고..
  4. 中 외국계 은행 ‘감원바람’… BNP..
  5. 中 2023년 31개 省 평균 임금..
  6. ‘혁신’과 ‘한계’ 화웨이(华为)의..
  7. 마음만은 ‘국빈’, 江浙沪 국빈관 숙..
  8. 中 눈곱·콧물·기침 아데노바이러스 기..
  9. 상하이, 일반·비일반 주택 기준 폐지..
  10. 텐센트, 3분기 영업이익 19% ↑

경제

  1. 샤오미 '솽스이’ 매출 6조원 돌파,..
  2. 2000만 유튜버 리즈치 3년만에 컴..
  3. 中 외국계 은행 ‘감원바람’… BNP..
  4. 상하이, 일반·비일반 주택 기준 폐지..
  5. 텐센트, 3분기 영업이익 19% ↑
  6. JD닷컴, 3분기 실적 기대치 상회…..
  7. 바이두, 첫 AI 안경 발표…촬영,..
  8. 금값 3년만에 최대폭 하락… 中 금..
  9. 中 12000km 떨어진 곳에서 원격..
  10. 中 무비자 정책에 韩 여행객 몰린다

사회

  1. 中 2023년 31개 省 평균 임금..
  2. 中 눈곱·콧물·기침 아데노바이러스 기..
  3. 中 근무 시간 낮잠 잤다가 해고된 남..
  4. 불임치료 받은 20대 중국 여성, 아..
  5. 上海 디즈니랜드, 12월 23일부터..

문화

  1. '한지의 거장' 이진우, 바오롱미술관..
  2. 찬바람이 불어오면, 따뜻한 상하이 가..
  3. [책읽는 상하이 259] 사건
  4. [책읽는 상하이 260] 앵무새 죽이..
  5. [신간안내] 상하이희망도서관 2024..
  6. [책읽는 상하이 258] 신상품“터지..

오피니언

  1. [인물열전 2] 중국 최고의 문장 고..
  2. [허스토리 in 상하이] 상하이 한인..
  3. [허스토리 in 상하이] 당신은 무엇..
  4. [박물관 리터러시 ②] ‘고려’의 흔..
  5. [무역협회] 미국의 對中 기술 제재가..
  6. 상해흥사단, 과거와 현재의 공존 '난..

프리미엄광고

ad

플러스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