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또 한 명의 친구가 상하이를 떠났다. 서울에서 쥬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내 친구 경아. 6년 전 남편을 따라 18개월 은호를 안고 상하이에 온 그녀를 친구의 소개로 처음 만났다. 나이만 같지 살아온 환경과 상황이 전혀 달랐음에도, 우리는 꼭 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처럼 서로 많은 것을 공감하고 공유했다. 나는 결혼 전 흥미진진한 삶을 살았던 그녀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녀의 추억을 따라 히말라야에 오르기도 했고, 일찍 어머니를 여읜 그녀의 애틋한 조언에 엄마와의 세계여행에 용기를 얻었다. 어른이 될수록 가벼워져 가는 만남과 헤어짐에 서글퍼하고 있던 시절, 서른을 한참 넘겨 만난 친구 경아는 한동안 나에게 큰 위로였다. 그리고 나는 이번에도 친구를 떠나보내며 또 한 번 익숙한 헤어짐을 겪었다.
해외살이의 필연적 운명처럼, 지난 10년간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졌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돌아섰던 아쉬운 작별부터, 더 이상 궁금해도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이별까지. 조병화 시인은 <공존의 이유>에서 ‘헤어짐이 잦은 우리, 이제 깊이 사귀지 말자’ 하였는데, 한번 마음을 열면 정을 깊게 주는 성격인 나는, 매번 헤어짐이 남긴 감정의 잔여물를 소화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런 나에게 언제부터 오고 가는 사람들을 무던히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이 생겼다. 모든 것들이 시절 인연처럼 왔다가 간다는 것을 머리로 알게 된 이후, 더 이상 관계에 쉬이 마음을 쏟지 않았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어쩌면 조금은 이기적인 동기가 숨어 있었겠지만, 이제 진짜 어른이 되어가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점점 더 만나던 사람만 만나고, 다니던 곳만 다니며 밀기의 장인이 되어갔다.
그러던 중 경아를 만났다. 나에게 특별한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찾아와 꽃다발을 건내고, 크리스마스에는 카드를 보내주던 친구. 육아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항상 상대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 진심인 그녀를 보며, 인간관계란, 돌려받고 싶다는 기대 없이 내가 주고 싶은 마음을 주며 그저 흘려보내는 것임을 배웠다. 상대의 상황과 마음을 지레 속단하여 경계하지 않고, 내 마음을 충실히 표현하면 그뿐이라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나는 운이 좋게 그녀를 만나, 관계 속에 움츠리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고, 반복된 헤어짐이 나에게 남긴 상흔을 알아차렸다.
비슷한 시기에 지구별에 태어나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있는 우리. 저마다의 시간 속에서 우연히 교차하며 함께 하는 순간을 가지는 신기한 인연들. 우리는 머무르지 않고 계속 다음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만남과 헤어짐은 필연적일 터인데, 돌아보니 상실감과 아쉬움에 눈물 콧물을 쏟았던 순간이 많았다. 그랬던 내가 서른을 한참 넘겨 마침내 헤어짐이란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새로운 발견을 하고, 또 어떤 새로운 일이 시작되기 위함임을 깨닫고 있다.
나와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남편과 아들을 항저우에 두고 상하이에 하루 먼저 도착한 그녀.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경아의 눈빛에는 나를 향한 아쉬움이 가득했다. 나는 익숙한 듯 담담했지만, 사실 헤어짐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그 자체에 익숙한, 아주 서툰 작별 인사를 건냈다. 지난 6년간 나의 시간과 경아의 시간이 우연히도 교차해 큰 행운이었다. 지금 내 곁에 다가와 있는 인연을 소중히 하고 마음껏 표현하는 그녀는 나에게 힐링 그 자체였다. 나도 그녀처럼 누군가에게 힐링이 될 수 있길. 경아가 어디에 있든 환영받고 평안하길 바란다.
상상(sangsang.story@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