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39)
몇 가지만 기억해 둬도 편리한 띄어쓰기
글쓰기에서 가장 헷갈리는 것, 누구라도 완벽하게 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띄어쓰기입니다. 하긴 저는 표준어나 맞춤법이 ‘이차방정식’이라면 띄어쓰기는 ‘미적분’쯤 된다고 생각합니다. 띄어쓰기를 제대로 하려면 띄어쓰기 규정을 기계적으로 따지는 정도에 머무는 게 아니라, 그 말이 가지고 있는 기본 의미와 문맥 속의 의미, 문법 기능 등까지도 잘 살펴야 하기 때문이지요.
바꾸어 말해서 ‘완벽하게’ 띄어 쓸 수만 있다면 그만큼 우리말을 이루는 다른 원리들까지도 속속들이 잘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수십 년을 우리 말글과 씨름하면서 남들 앞에서 이렇게 저 잘난 듯이 주저리주저리 풀어놓는 저 같은 사람조차도 완벽하게 띄어 쓴다고 장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니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도, 철저히 지키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을 듯합니다. 그토록 ‘어려운’ 것이니 언어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로서는 띄어쓰기 하나 제대로 못한다고 자책할 것까지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해서 여기서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많이들 헷갈리는 것 몇 가지만 살펴보려 합니다. 이 정도만 기억해 두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웬만큼 정확한 띄어쓰기를 할 수 있을 겁니다. 1988년에 한글 맞춤법을 개정하면서, 이전까지는 엄격하게 제한했던 붙여 쓰기를 비교적 관대하게 허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조사와 어미는 붙여 쓰고 의존 명사는 띄어 쓴다
이쯤이야 다들 알고 계시지요? 의존 명사는 ‘자립성이 없어 관형어 아래 기대어 쓰이는 명사’인데 개중에는 조사나 어미로도 쓰는 것이 있어 주의해야 합니다. 다음 보기에 나오는 ‘대로’, ‘만큼’, ‘밖에’, ‘만’을 조사와 의존 명사 그리고 어미로 나눠 봅시다.
⓵ 나는 나대로 갈 길을 가겠다.
⓶ 먹는 대로 살이 찐다.
⓷ 누가 나만큼 당신을 사랑하겠는가.
⓸ 먹는 만큼 살이 찐다.
⓹ 너도 이젠 어엿한 사회인이니만큼 제몫을 해야지.
⓺ 내게는 이제 너밖에 없다.
⓻ 이 밖에 삽살개, 풍산개 등도 천연 기념물이다.
정답부터 말씀드리지요. 조사는 ⓵ ⓷ ⓺, 의존 명사는 ⓶ ⓸, 어미는 ⓹, 그리고 ⓻은 ‘의존명사+조사’의 꼴입니다. 물론 몇 개 못 맞혔다고 해서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만, 다 맞히셨다면 대단하신 겁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봅시다. ‘대로’와 ‘만큼’은 체언 뒤에서는 조사(⓵, ⓷)로서 붙여 쓰지만, 용언의 관형형 뒤에 온다면 의존 명사(⓶, ⓸)이므로 띄어 씁니다. ‘만큼’은 이따금 ‘이유’를 나타내는 어미(~니만큼, ⓹)로도 씁니다. 이때는 당연히 붙여 써야겠지요.
그리고 ‘밖에’는 ‘뿐’의 뜻으로 써서 ‘없다’와 연결될 때는 조사(⓺)로서 붙여 쓰지만, ‘다른 것이 더 있음’을 뜻할 때는 ‘명사(밖)+조사(에)’의 꼴(⓻)로 보아 띄어 씁니다.
‘만’은 좀 복잡하니 따로 살펴봐야겠습니다.
⓵ 그 개는 송아지만 하더라.
⓶ 그 여자는 거짓말만 하고 있다.
⓷ 그 여자를 집어넣어야만 한다.
⓸ 그 여자는 하루 만에 말을 뒤집어 버렸다.
⓹ 정말 화를 낼 만하구나.
⓺ 정말 화를 낼 만도 하구나.
⓵~⓷은 각각 ‘정도’. ‘한정’, ‘강조’의 뜻을 가진 조사들이므로 앞말에 붙여 씁니다. ⓸는 기간을 뜻하는 의존 명사이니까 띄어 써야겠지요? 좀 헷갈리는 것이 ⓹와 ⓺입니다. ⓹는 뒤의 ‘~하다’와 결합하여 ‘만하다’를 보조형용사로 취급하므로, 앞말과는 띄어 쓰지만 ‘하다’와는 붙여 써야 합니다. ⓺은 뜻은 똑같은데 중간에 조사 ‘도’가 들어갔네요. 이때는 ‘만’이 의존 명사가 되고 ‘하다’는 용언이 되므로 ‘하다’ 앞에서 띄어 써야 합니다.
‘데’와 ‘지’도 헷갈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데’는 ‘~이다. 그런데’의 뜻일 때(덩치는 큰데 힘이 없다)는 어미로서 붙여 쓰지만, 장소나 경우를 뜻할 때(때릴 데가 없다/노는 데는 선수다)는 의존 명사로서 띄어 씁니다. 마찬가지로 ‘지’도 막연한 의문을 나타낼 때(그가 누구인지 아니?)는 붙여 쓰지만, ‘기간’을 뜻할 때(고향을 떠난 지 어언 십 년)는 띄어 씁니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어미입니다. 이는 조사와 더불어 착각하기 쉬운 것이니 주의해야겠습니다. 다음에서 –표로 이어진 부분은 어미이기 때문에 붙여 써야 하는 말들입니다.
* 먹으면 먹-을수록 배가 고프다.
* 차라리 굶어죽-을지언정 그 사람에게 손을 벌리지는 않겠다.
* 그 녀석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한다.
*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니 정말 서운하구나.
* 내 비록 배운 게 없-을망정 남한테 못할 짓을 한 적은 없다.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네요. 어쨌든 이 정도면 띄어쓰기의 1/3쯤은 정리한 셈입니다. 다음에는 보조 용언과 복합어의 띄어쓰기를 다루겠습니다. 그러나 연달아 띄어쓰기만 다루면 아마 읽고 싶지도 않을 만큼 골이 지끈거리실 테니 한두 가지 다른 얘기를 하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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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이후 현재까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전교조신문(현 교육희망)>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월간 <우리교육> 기자 및 출판부장(1990~1992), <교육희망> 교열부장(2001~2006) 등을 역임했다. 1989년 이후 민주언론운동협회가 주최하는 대학언론강좌를 비롯하여 전국 여러 대학 학보사와 교지편집위, 한겨레문화센터, 다수 신문사 등에서 대학생, 기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리말과 글쓰기 강의를 해오고 있다. 또한 <교육희망>, <우리교육>, <독서평설>, <빨간펜> 등에 우리말 바로쓰기, 글쓰기(논술) 강좌 등을 기고 또는 연재 중이다.
ccamya@hanmail.net [김효곤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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