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일년 중 지금 이 10월이 최고의 계절이란 건 누구나 알 것이다. 하긴 금방 오신 분들이야 한국의 가을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따가운 햇살과 스치는 바람이 자외선의 두려움도 잊을 정도로 나를 유혹한다.
칭푸로 이사온 지 반년. 우리는 또 이사를 했다. 지인의 부탁으로 이곳 저곳 집을 보며 소개했던 집을 우리가 오게 된 것이다. 비슷한 구조에 저렴한 집세에 끌려 야진을 포기하고 덥석 계약은 했지만 난 그다지 맘에 들진 않았다. 꽤나 오래 비어있었던 느낌에다 그날 비까지 와서 실내가 어둡게 느껴지고 뒷마당엔 잔디와 풀들이 잔뜩 자라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나는 한동안 툴툴대며 불만이 가득했다.
운동하며 단지를 돌 때마다 미리 이사할 집 앞으로 와서 돌아보며 정을 붙이려고 노력도 했지만 첫인상은 언제나 강한 것인지 좀처럼 맘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비어있는 집이라 며칠 전부터 청소를 하고 뒷마당 잔디를 깎고 정리를 하고 나니 조금씩 눈에 들어오면서 마음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또 같은 단지라 조금씩 작은 물건들을 옮기고 둘러보며 이곳 저곳 가구 배치할 생각도 하다 보니 빨리 이사하고픈 마음이 바빠졌다.
드디어 이사를 마치고 그렇게 성가스럽게 느껴졌던 뒷마당에 숯불을 피워 그날 당장에 바비큐를 굽고 함께 온 꼬맹이들과 하늘에 별도 보고 달도 보고 웃고 떠들다 보니 이미 난 이곳에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과 아들녀석 때문에 우리 집 뒷마당은 주말마다 고기 굽는 냄새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가장 황홀한 계절과 맞물려 요즘 난 작은 행복을 느낀다. 거실 가득히 비취는 햇볕과 마당에서 바람에 펄럭이며 뽀송뽀송하게 말라가는 빨래들 주위에 한국인 이웃이 없어도 차 한잔 앞에 두고 음악 들으며 책도 읽고 가진 것 없는 것 같지만 부러울 것도 없는 하루를 보낸다.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란다. 지금 현재의 내게 주어진 것을 누리지 못한다면 아무리 큰 것이 내 앞에 있어도 그것이 감사가 아니라 욕심이 될 수 있다. 부족한 것 어쩔 수 없는 것 알면서도 받아드리기 힘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내게 필요한 것들이 넘치도록 가득하다는 걸 자연을 보며 깨닫고 감사하게 되니 난 복받은 사람이다. 아니 누리는 사람이다. 이제 이것이 넘쳐 욕심이 아니라 흘러가게 하는 삶을 사는 성숙해 가는 나를 기대한다.
새로 이사한 우리집이 참 좋다. 잠시라도 불평했던 마음이 미안하게 이 공간이 내게 안식을 주고 기쁨을 준다. 그러면서 난 생각한다. 누구나 어디나 의미가 없는 것은 없고 다 가치가 있다고, 그것을 볼 여유가 없을 뿐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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