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 23]
이제는 접어야 할 국한문 혼용론
몇 년 전 어느 어문단체에서 ‘국어를 표기하는 우리의 고유 문자를 한글로 규정하고, 그에 따라 모든 공문서와 교과서 등에서 한글만을 쓰도록 한 국어기본법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우리말의 정확한 이해와 사용을 위해서는 한자 사용이 필수적’인데, ‘한자 혼용을 금지한 국어기본법은 어문 생활에 관한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잠잠한가 했더니, 지난 5월 12일 헌법재판소에서 이 문제를 두고 공개변론을 벌이면서 다시금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요약해 보면 대략 이러합니다.
① 2000년 넘도록 한자를 사용해온 결과, 사전에 실린 표제어의 70% 이상이 한자어일 만큼 우리 국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므로 한자를 알아야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
② 한자는 그림글자이므로 글자만 보고도 쉽게 뜻을 알 수 있고 조어력도 뛰어나 소리글자인 한글의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다. 특히 동음이의어 때문에 생기는 혼란을 줄여 준다.
③ 중국과 일본 등 여전히 한자를 쓰고 있는 이웃 한자문화권 나라들과의 소통과 문화 교류에도 도움이 된다.
④ 한글이 만들어진 15세기 이전은 물론이고 그 이후로도 수백 년 동안 한자가 주된 기록 수단이었으므로 한자를 버린다면 우리 문화와 역사의 대부분을 포기하는 것이다. 서양에서 라틴어가 죽은말이 된 지 천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라틴어를 공부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⑤ 나아가 한자 자체도 원래 동이족이 창안한 것이므로 결국은 우리 문자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저는 이와 같은 주장들이 충분한 논거를 갖추지 못한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자를 섞어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한자를 쓰지 않으면 동음이의어가 많아진다는 주장은 특히 일본어와 비교해 볼 때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입니다.
일본어는 음절문자로서 발음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동음이의어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즉, 일본어는 청음, 탁음, 반탁음, 요음을 모두 합쳐도 106가지 발음에, 받침이라고는 ‘ん’ 하나뿐이라 최대 212개 음절까지 발음할 수 있습니다((45+20+5+36)×2=212).
이에 비해 우리말은 초성 19개, 중성 21개에다가 받침소리 7개와 받침 없는 경우까지 더하면 최대 3천개가 넘는 음절을 발음할 수 있습니다(19×21×(7+1)=3,192). 이걸 다시 두 음절짜리로 확대해 보면 그 차이는 무지막지하게 벌어집니다. 일본어는 212개의 제곱이니 5만이 채 안 되는 데 비해(44,944가지) 우리말은 3,192개의 제곱이니 1000만이 훌쩍 넘습니다(10,188,864가지).
이렇듯 다양한 발음이 가능하니 동음이의어가 적을 수밖에 없고, 간혹 있다 하더라도 문맥 속에서 충분히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일본말은 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아져서 고유 문자인 가나만으로는 도저히 뜻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불편을 무릅쓰고 한자어를 섞어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말은 컴퓨터든 휴대폰이든 입력이 간편하나, 한자나 일본어는 입력하기가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한자는 글자판에 다 올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일본어도 글자판에 올리다 보면 숫자나 특수문자 영역까지 다 차지해 버리기 때문에 한글자판이나 영문자판에 비해 타수가 훨씬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생략합니다.
* 해방 후 한글운동의 선구자였던 외솔 최현배 선생은 한때 ‘우리말 가로 풀어쓰기’를 주장한 바 있습니다. 한글은 초, 중, 종성이 모여 한 음절을 이루는데, 가로뿐 아니라 세로로도 붙여 써야 하기 때문에 입력하기가 불편해서 기계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수동타자기 시절의 얘기이고, 컴퓨터 입력 체계가 발전하여 한글 모아 찍기가 자동으로 실현되는 지금은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음절 구분이 어려운 영어와 달리 한 음절씩 정확히 구별되는 우리말이 컴퓨터 공학적으로는 더 유리한 점이 많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셋째, 똑같은 한자를 세 나라에서 같이 쓴다 해도 뜻이 항상 같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애인(愛人)’이라는 말은 우리말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중국에서는 ‘남편이나 아내’, 일본에서는 ‘남편이나 아내 몰래 만나는 이성, 즉 정부’를 뜻합니다. 또, ‘기차(汽車)’가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열차를 뜻하지만, 중국에서는 자동차를 뜻합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삼십년 쯤 전 일본에서 안중근 의사를 ‘장사(壯士)’라고 표현하여 논란이 된 적도 있습니다. ‘장사’는 우리말에서도 ‘몸이 우람하고 힘이 아주 센 사람’이라는 뜻이어서 안중근 의사와는 동떨어진 생뚱맞은 표현이지만, 일본말에서는 한술 더 떠서 ‘1. 씩씩한 남자, 2. 폭력으로 사건 교섭이나 협박을 일삼는 건달’이라는 뜻이어서 대놓고 안중근 의사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얄팍한 표현이었던 것이지요.
넷째, 세 나라에서 쓰는 한자는 이제 서로 글자 모양부터 다릅니다.
한자를 원래대로 쓰는 나라는 우리뿐이고, 중국은 간체자, 일본은 약자를 씁니다. 두 나라 다 한자를 쓰지 않을 수 없기에 복잡한 글자를 간편하게 줄여 쓰는 문화가 발달한 것이지요. 이때 획수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발음이 비슷하면서 획이 적은 다른 글자를 차용하여 쓰는 일도 흔하기 때문에 아무리 한자의 원래 뜻을 정확히 안다 해도 한참 달라진 현대 중국어나 일본어와는 통하지 않아 당황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일본의 약자는 ㅈㅅ일보나 ㅅㅅ그룹 등 일부 일본문화 애호 계층에서 열심히 퍼 나른 덕에 어느 정도 알아볼 수도 있지만, 중국의 간체자는 웬만큼 한자를 안다는 사람들조차도 대부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한국인이 제대로 갖추어 쓴 한자를 정작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거의 알아보지 못합니다.
다섯째, 우리 선조들이 수천 년 동안 남긴 방대한 한문 서적들을 읽으려면 한문을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 엄청난 문화유산을 그대로 묻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상생활에서 국한문을 혼용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입니다. 전문가들을 키워 연구와 번역에 종사하게 하면 될 일이지 모든 사람이 다 한자를 공부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지요.
이미 50여 년 전에 민간 주도로 민족문화추진회를 설립한 후, 국역연수원을 열어 한문 번역가들을 키워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이 일을 국립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이어받았다고는 하는데, 과제로 놓인 어마어마한 유산에 비해 그 규모나 지원은 미약한 듯합니다. 나라에서 이 일에 더 공을 들여야겠지요.
올해로 환갑인 저는 한글전용 세대이기 때문에 정식으로 한자를 배운 기억이 거의 없습니다. 딱 50년 전인 1966년,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국어교과서에서 ‘국민(國民)’, ‘자유(自由)’ 식으로 표기된 한자 이삼백 자를 만났을 뿐입니다. 이후 한글전용정책이 시행되면서 한자는 교과서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그런데 나중에 대학에 가니, 신문마다 대학생들의 무식함을 걱정하고 꾸짖는 칼럼과 사설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교수님들조차 우리를 무시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신문도 제대로 못 읽는다.”는 것이었지요. 따지고 보면 우리들이야 애매한 욕을 먹은 셈입니다. 제대로 가르쳐 준 적도 없으면서 책이고 신문이고 한자를 잔뜩 섞어 써서 도무지 읽을 수 없게 만든 기성세대들이야말로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요?
그때만 해도 100만 명 가까운 동갑내기 가운데 겨우 6만 명 남짓만 대학 가던 시절이니, 대학생이라면 선택받은 계층이었는데도 그들조차 읽을 수 없는 신문이라면, 그 잘난 대학도 못 간 나머지 90% 이상에게 신문이란 어떤 존재였을까요? 대학 시절, 잠시 야학에서 국어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저보다 나이 많은 누님, 이모뻘 학생들의 절박한 요구에 따라 교과서 대신 '신문 읽기'를 감히(!!) 가르치느라고 교과서는 제대로 들춰볼 시간도 없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렇듯 극소수만 누리는 고급문화(?)였던 신문이, 80~90년대의 도도한 민주화 흐름과 맞물리면서 대중화를 꾀한 결과,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로 바뀌어 이제는 한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요즘 신문이 여러모로 저질스러워졌다는 비판은 있지만, 어쨌든 이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신문이 된 것이지요.
이와 같은 경험을 지닌 저로서는, 수십 년 세월을 건너뛰어 ‘좀비’처럼 튀어나온 국한문혼용 주장이 '다시 1%만을 위한 비뚤어진 언어생활로 돌아가자'는 철 지난 메아리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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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80년 이후 현재까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이다. 1987년부터 1990년까지 <전교조신문(현 교육희망)>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월간 <우리교육> 기자 및 출판부장(1990~1992), <교육희망> 교열부장(2001~2006) 등을 역임했다. 1989년 이후 민주언론운동협회가 주최하는 대학언론강좌를 비롯하여 전국 여러 대학 학보사와 교지편집위, 한겨레문화센터, 다수 신문사 등에서 대학생, 기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우리말과 글쓰기 강의를 해오고 있다. 또한 <교육희망>, <우리교육>, <독서평설>, <빨간펜> 등에 우리말 바로쓰기, 글쓰기(논술) 강좌 등을 기고 또는 연재 중이다.
ccamya@hanmail.net [김효곤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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