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크레 쾨르 성당 옆의 레게 음악을 뒤로하고 골목길을 빠져 나오는데 여러
사람이 모여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뜻밖에도 예쁘게 생긴 첫 번째,
여성 화가가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꽂고 스케치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기 위해
그 화가의 곁으로 가서 보니, 연필로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라 마커를 사용하여 인물화를 그리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웬만한 수준이 아니면 마커를 사용하기 힘든데 거침없이 마커를 사용하는 모습에 “참 멋있는 화가네”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꽂고 서서 무언가를 그리는 화가. 일반적으로
화가는 앉아서 그리는데 특이하게 이분들은 모델도 서서 있고, 화가도 서서 그림을 그렸다. 더 놀란 것은 밑그림 없이 유성 마커Marker로 거침없이 인물화를
그리고 있었다. 모델과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 그리는 데 몰두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불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니 아마 프랑스인 같았다. 또한, 이 복잡한 거리에서 젊은 여성 화가의 퍼포먼스에 관광객들도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건물 모퉁이에서는 점박이 개가 사람들처럼 그런 풍경을 보는 이색적인 장면도 있었다.
길거리의 다양한 장면을 보고 내려오다가 12년 전에
보았던 화가들의 그림을 그리는 곳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몽마르트르 언덕의 전 세계 화가들이
모인 공동체 구역이라 볼 수 있는 곳에 도착하여 마주친 화가의 작품도 에펠탑이 보이는 센 강을 배경으로 한 수채화 스타일의 유화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보면서 왼쪽으로 방향을 돌려 그림을 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한국 화가로 보이는 여성분을 만날 수 있었다. 프랑스에
온 지 8년이 넘었다고 하면서 그 동안의 파리 생활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나를 그리고 싶다고 하였다. 화가 왼편의 샘플로 그린 중년
여성의 그림을 보니 제법 그림 솜씨가 좋아 보였다. 그래서 흩어져서 그림을 구경하는 가족들을 찾아서
이번 기회에 각자의 인물화를 그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의견을 모았는데 아내만 빼고 모두 좋다고 하였다.
그렇게 가족들과 회의를 한 후에 먼저 우형이를 한국 화가한테 의뢰하며 화가의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앉히고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약 5~10분이 지나자
우형이 얼굴의 윤곽이 드러났다. 30분 정도 소요되는 과정이라 그곳에서 계속 있을 수 없어서 우리 일행은
자리를 이동했다.
10여 분이 지난 후에 우형이 그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갔는데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우형이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그릴 때 전체적으로 구도를 잡고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게 보통인데, 한국 화가는 그렇지 않고 반대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 작품을 보면서 문득 우형이한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괜히
이분한테 의뢰했구나 하는 후회가 들었다. 이미 15분 이상이
지난 시간이라 다른 선택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화가 왼쪽에 놓인 그림을 보았는데
지금 그리는 우형이의 그림과는 화풍이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화가 왼쪽에 그린 그림은 다른 화가의 그림이었다. 우형이를
그리는 화가의 그림이 오른편 바닥에 작은 사이즈로 전시되어 있었는데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나의 불찰이 있었다.
완성된 우형이 초상화는 내가 보기에도 작품이 우수하지 못했다.
우형이가 본인의 작품을 보고 실망할까 봐 계속 그 자리에 있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그 한국
화가가 우형이에게 아빠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을때 한국의 H 대학에서 미술 전공했다고 하니까 그 화가가
잠시 당황하셨다고 하면서 걱정하는 눈빛이었다고 했다.
차홍이의 인물화를 제일 잘 그릴 수 있는 화가를 만나게 되었다. 인물 스케치를 한 후에 수성 물감을 사용하여 그리는 화풍의 수채화 화가였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뜻밖에 루마니아Romania 사람이라고 하였다. 북경에 사는 한국 사람이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 와서 루마니아 화가한테 인물화를 그리게 한다. 생각만 해도 재미있는 체험이었다. 차홍이가 모델로 자리를 잡고 난
후에 화가는 연필로 구도를 잡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측면을 그리면 여성미를 표현하기에 좋아서 모델의 우측면은 살짝 눈썹만 보이게
하고 좌측 얼굴이 많이 보이는 구도를 선택하였다. 스케치하는 손놀림을 통해서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가 들었다. 프랑스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모델을 하는 차홍이 모습에서 단아함을 볼 수 있었으며, 그러한 표정이 작품 속에 담겨 있었다. 스케치를 10분 정도 한 후에 수채화 채색을 하는데 이미지가 좋게 보였다.
차홍이한테 돌아온 시간은 수채화가 거의 마무리 되어 갈 즈음이었다. 그림의 완성도로 볼 때 60%였는데, 나름대로는 작품성이 있어 보였으며 특히 차홍이도 본인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다. 일반적으로 마로니에 공원의 초상화는 최소 50유로 이상을 받는데
우리는 40유로로 20% 할인을 받아서 결제를 하였다. 결제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멋쟁이 아저씨는 그림을 담을 수 있는 그림통을 3유로에 판다고 하였다. 아마도 그림을 그냥 가지고 다니는 것 보다는
통으로 만든 수제 케이스에 담는 것이 좋을거 같아서 멋쟁이 아저씨가 판매하는 그림통을 구입하기로 하였다.
예쁜 케이스에 그림을 넣고 천연색의 커버 천을 뚜껑으로 씌워서 예쁘게 포장하였다. 친절하게 사진도 같이 촬영하면서 기분 좋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리고
우형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는데, 환하게 웃으면서 요다처럼 그렸다고 하면서 실망한 표정보다는 약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한테 다가왔다. 차홍이에 비해 인물화가 예쁘게 나오지 못해서 그런지 내 마음도 별로 좋지
않았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이곳을 나오는데 나도 모델이 되어서 작품을 남기고 싶어서 차홍이와 상의를
했다. 차홍이는 내가 꼽아 놓았던 3분 중 한 분을 추천했다. 일반적으로 이곳의 화가들은 파스텔이나 연필로 그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내가
인물화를 맡기기로 한 화가는 색연필을 사용해서 그리는 분이었다. 그것도 회화적인 스타일로 그리는 모습이
무척 좋아 보였다.
네 번째의 화가는 차홍이와 함께 상의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차홍이의
그림 보는 안목을 평가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회화적인 느낌이 강한 화가를 선호했기에
수십 명의 화가 중에서 비교적 회화적인 이미지가 강한 화가를 선정하였다. 한국의 H 미술 대학에 다니는 동안 크로키는 물론 누드 데생까지 경험이 있었으나 직접 자화상 모델이 된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기에 약간의 흥분과 설렘이 있었다. 작업 시간은 30분이
넘지 않는다고 하였다.
모델을 서고 있는 30분 동안 주위 화가들의 작품을
곁눈질로 보기도 하였다. 건너편에서 그림 그리는 화가의 찡그리는 모습과 나와 같이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델의 모습을 포함하여 몽마르트르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과거 대학생 때 누드모델을 데생했던 기억도 떠오르며, 모델이
쉽지가 않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건너편에서 차홍이가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는데, 그 모습을 가끔 보려고 하면 화가는 움직이지 말라고 불어로 이야기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어봤는데, 프랑스 사람이라고 하면서 파리가
아닌 남부 지역의 미술 대학을 나왔다고 했다. 화가가 잠시 색연필을 깎을 때 잠시 그림을 봐도 되느냐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화가가 있는 곳으로 갔는데 생각보다 작품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첫째는 화면에 꽉 차게 그려야 하는데 화면 안에 작게 얼굴이 들어갔으며, 두 번째로는 화면의 얼굴 쪽에 여유 공간이 많지 않아 답답하게 보이는 단점이 눈에 들어왔다. 30분 동안 40유로의 돈을 지급하고 얻는 작품의 수준을 고려할
때 적당하다 할 정도의 작품이었다. 10여 분의 수정 과정을 통해서 얻은 작품의 수준보다는 이곳 파리의
몽마르트르에 와서 화가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기쁨이 더 큰 시간이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의 예쁜 추억을 담고 내려오는 골목길은
1900년대 전후 화가들의 작품 중에서 샤갈, 고흐 , 모네, 피카소 등의 작품을 응용하거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물랭 루주Moulin
Rouge, 몽마르트르의 문화 예술을 포스터로 표현하여 거리의 품격을 높여 주고 있었다. 특히
산업 혁명 이후 순수 예술에서 벗어나 대량 생산을 위한 산업의 발전에 따른 응용 미술로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몽마르트르 언덕은 근대 미술 발달을 촉진한 예술가들이 살았던 지역으로서도 유명하다. 특히 19세기 후반 이래 고흐, 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를 비롯한 많은 화가와 시인들 이 모여들어 인상파, 상징파, 입체파 등의 발상지를 이루었다. 문화 예술의 중심지 파리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몽마르트르 언덕, 그림, 마임, 악기 연주, 마술
등 다양한 예술을 즐길 수 있다. 대부분의 길거리 아티스트가 초상화를 그려 주는 곳이며 추억을 남기고
싶은 사람들은 이들을 통해서 개인의 초상화를 믿고 맡겨도 좋은 곳이기도 하다.
<빵점 아빠, 가족을 품다>중에서
홍익대학교 공업디자인(학사), 브랜드디자인(석사)을 전공, 2013년 본대학원에서 세계 최초'자연주의 화장품 글로컬브랜딩전략' 연구 논문으로 미술학 박사(Phd. D.)를 수여 받았다. 1987년 LG생활건강(구/LUCKY) 디자인연구소에서 15년 동안 근무하였다. 2002년 말 중국 주재원으로 3개 법인의 디자인연구소를 총괄하였다. 또한 2005년 6월 LG생활건강에서 분사하여 디자인전문가 그룹인 디자인윙크(DESIGN WINC)을 설립. 현재 청지봉 봉사, 사색의 향기(상해), 뷰티누리(중국)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사진,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아 해외 여행을 통한 사진촬영 작품 공유활동을 하고 있다.
(네이버블로그:파바로티정)
http://blog.naver.com/woonsung11
woonsung11@naver.com [정운성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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