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함께한 30일간의 유럽 여행]
2015.07.27 이탈리아 베네치아
제일 행복했던 리도Lido 섬의 해수욕장과 불행을 자초한 부라노, 무라노 섬의 여행 일기
리도Lido 섬은 아드리아 해Adriatic Sea를 바라보고 있는 섬 중의 하나이며, 우리가 도착한 해수욕장은 Lido Des Bains Hotel에서 운영하는 개인 해수욕장이었다. 멀리서 리도 섬이 보였으며, 우리 배를 기다리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뒤편에 과거 한국의 중앙청 모습을 한 원형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역에 내려서 가족과 함께 간단하게 파스타로 식사하고 해수욕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왼쪽에는 많은 인파가 해수욕을 즐기는 곳이었으며, 우리 일행은 오른쪽에서 운영하는 좀 있어 보이는 해수욕장으로 들어섰다. 보기에도 방갈로가 가지런히 있었으며, 비싸 보이는 해수욕장이었다. 종업원의 말로도 이 지역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개인이 관리하는 해수욕장이라고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차홍이, 우형이가 해수욕을 했으면 하는 의견을 냈고, 준비하지 못한 수영복을 사기 위해서 상점원들과 상의를 하였다. 우리가 2~3시간 묶을 방갈로나 파라솔을 꼭 사용해야만 입장할 수 있다고 해서, 먼저 관리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서 가격 흥정을 해서 원래 가격보다 많이 할인받았다. 그렇게 관리소에서 상담하는데 흑인 2명이 치고받고 하는 큰 싸움이 일어났고, 아내가 잠시 앉아 있던 의자를 덮쳤다. 두 사람 모두 180㎝가 넘는 거구에 100㎏ 이상 되는 사람들이었다.
관리소에서 방갈로가 아닌 4인용 파라솔 2개 사용에 대한 가격 흥정을 마치고 나서 우리 부부는 관리소 입구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고, 차홍이가 관리소 안에서 계산하고 있을 때 밖에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창 밖에서 본 상황으로는 건장한 남자 두 명이 서로 다투면서 관리소 안으로 들어오려다가 몸싸움이 벌어졌다. 밖의 의자에 앉아 있던 아내는 깜짝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 문을 열고 나와서 아내를 데리고 잽싸게 화단을 건너서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던 중 1, 2초도 안 되어서 입구 화단 쪽으로 두 사람이 엉겨붙어 넘어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빨간색 입은 건장한 남자가 흰색을 입은 흑인의 위에 자리를 잡고 싸움의 우위를 보였으나, 오래 가지 않아 흰옷을 입은 건장한 사람이 위에서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은 입술과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관리소 사람들이 있었지만, 워낙 거구들의 싸움이라 말릴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여러 사람이 나타나서 말리는 것을 보니, 관리하는 사람과 장사를 하는 사람의 영역 싸움에서 일어난 사건임을 알 수 있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해수욕장에서 허가 없이 들어온 장사꾼과의 말싸움에서 시작한 것이 주먹 싸움까지 진행된 상황을 나와 아내는 멀찌감치 뒤에서 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차홍이, 우형이가 싸움을 하고 있는 관리사무소에서 미처 빠져나오기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싸움하기 바로 전에 관리소 입구에서 빠져나왔기에 화는 면했으나, 일촉즉발의 상황임을 생각하면 무척 다행인 상황이었다.
15분여의 소요 사태 이후, 무사히 차홍이와 우형이도 관리소에서 나와 파라솔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곳에서도 두 사람의 다툼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피를 본 상태여서 격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 옆을 지나오는데 관리원들 10여 명이 두 사람을 말리고 있었으며, 경찰이 올 때까지 두 사람의 숨소리가 크게 들렸었다.
우리 일행은 방갈로 바로 뒤편의 파라솔에 자리를 잡았다. 차홍이와 우형이는 수영복을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자리를 옮겼으며, 나와 아내는 파라솔에서 짐 정리를 하고 휴식 시간을 가졌다. 바닷가와 백사장 바로 앞에는 방갈로가 있었으며 방갈로 뒤편에 파라솔이 있었는데 방갈로와 가까이 있는 첫 번째 줄이 제일 비쌌으며 두 번째, 세 번째 줄은 그다음 순이었다.
차홍이와 우형이가 어렸을 때를 빼곤 성장해서 가족과 함께 수영장을 가 본 적이 없기에 성장해서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조금 어색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성장하는동안 스킨십을 많이 하지 못했으며, 가족과 함께 수영장 또한 같이 가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오늘 이곳 리도 섬의 환상적인 수영장에서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방갈로의 형태와 색상은 지푸라기를 새끼로 꽈서 만든 것처럼 내추럴한 컬러였으며, 파라솔 바닥의 녹색과는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색상을 띄고 있었다.
차홍이와 우형이가 해변가로 가서 수영을 즐기고 있는 동안 아내와 나는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옆자리의 어린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5살 전후의 오빠 2명을 둔 아기였는데, 2살이 넘지 않은 유럽 계통의 아기가 무언가를 먹고 있는 모습이 무척 예뻤다. 먹고 있는 동안 오빠가 무슨 이야기를 이야기하는데 웃는 모습도 참 예뻤다. 이야기하는 모습이 이탈리아 현지의 아이들인 것으로 보였다.
리도 섬의 Des Bains의 해수욕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면서 책을 보고 있는 관광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또한, 해수욕장에서 아이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해수욕장 해변에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부모로서 수영하는 자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정말 좋았다. 그들을 보면서 좀 더 일찍 아빠로서 아이들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들 오른쪽에서 수영하고 있는 차홍이와 우형이가 눈에 들어왔다. 날씨가 좀 추운지 우형이가 살짝 추워 보였으며 뒤쪽에서는 차홍이가 수영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 어느 사이에 모두 성장해 버린 차홍이와 우형이의 모습을 보니 한편으로는 대견스러웠으며 또 한편으로는 평상시에 자녀들과 함께 즐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한참 동안 해수욕을 즐기고 해가 질 즈음 갑자기 방갈로 건너편에서 갈매기 떼가 소리를 지르며 우리가 있는 파라솔 쪽으로 오고 있다. 저녁 무렵의 갈매기가 흡사 까마귀 떼처럼 보였다. 갑작스러운 주위 환경의 변화에 우리는 짐을 싸고 정리를 하였다. 베네치아 영화제로 유명세가 있는 이곳 리도 섬에서 계획에 없었던 리도 해수욕장의 추억을 뒤로하고 선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도 섬은 베네치아의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이곳은 매년 열리는 세계 4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다. 영화의 섬이라 불릴 만큼 유명한 곳에서 석양에 고요하게 빛나는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참으로 행복했다. 오히려 상해에 돌아와서 유럽 여행 사진을 정리하면서 정말로 환상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날 오후 리도 섬의 해변에서의 우연히 만든 우리 가족의 추억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내 마음에 남아 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섬은 리도 섬이었다. 특히 이곳은 ‘황금 섬’이라고 불릴 만큼 귀족과 부유층을 위한 화려한 섬이기도 했으며, 베네치아 최초로 해수욕장이 생긴 곳이기도 하다. 여기까지의 여행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오늘의 여행을 정리하고 산타 마리아의 호텔로 돌아와야 했었는데 무라노, 부라노 섬을 가는 게 좋겠다고 강행한 것이 가족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아주 좋았는데, 욕심을 내서 내 의지대로 움직이면서 감행한 2시간 정도의 유람선 여행을 통해서 가족 간의 사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족의 돌봄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한 일정으로 인해 저녁을 먹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아내는 물론이고 차홍이까지 아빠를 보는 눈이 보통 때와 달랐다.
리도 섬에서 너무 오래 있었던 탓에 전제적인 스케줄에 이상이 생긴 것이었다.
부라노Burano, 무라노Murano 섬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 내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무라노 섬에 도착해서였다.
이미 저녁을 먹기에는 시간이 지난 상태였고 리도 섬에서 8시 15분에 출발한 여객선이 여러 섬을 거쳐 이곳에 도착한 시각은 9시 30분이 넘어서였다.
밖이 너무 어두워서 섬을 구경하지 못할 정도의 환경이었다. 또한, 그곳 선착장에서는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학생들이 20여 명있었는데, 이 친구들이 단체로 담배를 피우며 고성방가는 물론이고 이곳 무라노 섬을 점령하고 있는 듯하였다.
어른들이라고는 우리 가족과 건너편에 앉아 있는 커플 한 쌍밖에 없는 터라 그들의 잘못을 잡아 주지 못하는 환경이었다. 조금 있으니까 담배를 피우던 학생들은 우르르 밖으로 나갔으나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두 학생이 선착장 안의 대합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일반 담배가 아니고 대마초로 보이는 것을 피우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우리 가족도 함께 보고 있었는데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늦은 시간에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 가장인 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발생한 일이기에 너무나 미안했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가끔 맞은편의 학생이 우리를 보고 대마초를 피우는데도 어른으로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 한편으론 너무 씁쓸했다. 그 대합실에서 기다린 30분 내내 가족들에게 지금 생각해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말은 못하고 대합실에서 가족의 눈치만 보았던 빵점 아빠의 기억이 난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얼마쯤 시간이 지났는지 선착장 대합실 건너편에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산타 루치아 역으로 향하는 유람선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우리 일행은 바로 온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산타 루치아 역으로 돌아오는 시간 내내 가족들의 대화가 없었으며, 침묵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래도 우형이가 아빠 편이라고 아빠 어깨를 두들겨 주곤 했는데 별로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무리하게 강행한 일정으로 가족들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난다. 10시 30분이 넘어서 산타 루치아 역에 도착하여 호텔 앞의 야외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했다.
나는 어렵게 식사 중에 아내와 아이들한테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이미 2시간 이상 고생을 해서 그랬는지 아내는 물론이고 아이들까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늦은 저녁 식사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쳤으며 가족과 함께 호텔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빵점 아빠, 가족을 품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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